■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신해철
‘흐르는 시간 속에서/질문은 지워지지 않네/우린 그 무엇을 찾아/이 세상에 왔을까(신해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중). 팬들은 외친다. “죽도록 사랑해.” 그런데 ‘죽도록’의 뜻을 아는가. ‘죽을 때까지’라는 의미다. 죽도록 사랑한 팬은 결국 그를 무대에서 죽이고 총총히 떠난다. ‘죽어도’ 사랑한 팬만이 객석에 남아서 그의 음악을 지킨다.
“모 대학 교수님이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제가 아이돌 하지 않았으면 좋겠대요. 캐럴 킹처럼 자기 인생을 노래하는 아티스트가 됐으면 한다고요.” 이상은에게 TV는 한낱 ‘외롭고 웃긴 가게’(1997년·7집 타이틀곡)였다. “들려주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나의 모습은 마치 혼이 빠진 허수아비 같았다.” 앞만 보고 옆만 보다간 나를 보지 못할 때가 있다. 결단과 연단이 필요하다. 박수 소리에 취하다가 상품은 재고가 된다. 그는 인형 대신 인생을 택했다. ‘불빛은 배우를 따라서 바삐 돌아가지만/끝나면 모두들 떠나버리고/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샤프 ‘연극이 끝난 후’ 중). 고독의 심연과 마주하는 순간을 스타는 각오해야 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날아 가버린 새를 그려/새장 속에 넣으며 울었지’(이상은 ‘삶은 여행’ 중). 대중도 기획사도 아티스트에게 날개를 달아주진 않는다. 구도자는 뒤늦게 자각한다. ‘눈물 잉크로 쓴 시’와 ‘길을 잃은 멜로디’만이 ‘혼자 비바람 속을/걸어갈 수 있어야 했던 걸’(‘삶은 여행’ 중).
바닥과 입 맞추어야 공은 튀어오를 수 있다. 예술가에게 그래서 절망은 공통필수다. ‘내 심장은 날이 갈수록 식어 가는데/내 등 뒤엔 유령들처럼/옛 꿈들이 날 원망하며 서있네’(신해철 ‘절망에 관하여’ 중). 신해철(사진)의 별칭은 마왕이다. 조용필의 별호는 가왕이다. 마왕이 가왕을 만났을 때 영화가 시작된다. 1988년 MBC 강변가요제 예선에 ‘아기천사’ 멤버로 출전했던 신해철은 탬버린을 든 키 큰 여학생(이상은)과 한 번쯤 스쳤을 것이다. 상은이 신데렐라가 될 때 스무 살의 가을을 보낸 해철은 회심의 역작 ‘그대에게’를 들고 다른 무대로 진격한다. 그 무렵 겨울나무 사이로 잡힌 서강대 강의실에는 ‘대학가요제 대상 받으러 간다’는 해철의 호기로운 낙서가 뚜렷했다.
심사위원석에 가왕이 앉는다. 청년은 낡은 지도를 불태우고 궤도 위를 무한질주한다. 가왕은 전주만 듣고도 대상을 예감한다. 그리고 26년(2014) 후, 그 가을은 불길했다. 마왕의 돌연한 죽음.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날아라 병아리’ 중). 영결식에 가왕의 화환이 앞자리에 놓인다. 화면 위로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Here I stand for you)’가 흐른다. ‘난 바보처럼/요즘 세상에도/운명이라는 말을 믿어/그저 지쳐서/필요로 만나고/생활을 위해 살기는 싫어’. 묘비에 새겨진 글자들이 오버랩된다. ‘하지만 익숙해진 이 고독과/똑같은 일상도/한 해 또 한 해/지날수록 더욱 힘들어/등불을 들고/여기 서 있을게’. 블랙 위로 엔딩 자막이 흐른다. “가족장을 치른 직후 자작곡 ‘민물장어의 꿈’이 7개 음원사이트에서 1위에 오르다.” 그 가사는 이러하다. ‘쉬지 말고 가라 하는/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성난 파도 아래/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흐느껴 울고 웃다가/긴 여행을 끝내리’. ‘아, 가신님을 어이 할꼬’(이상은 ‘공무도하가’ 중).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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