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셰어링 업체 쏘카의 이재웅 대표가 20일 기획재정부 산하 혁신성장본부 민간본부장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공동창업자이기도 한 이 본부장은 국내 혁신창업 1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가 페이스북에 사퇴의 변을 올리면서 첨부한 삽화에는 ‘당신의 제안서는 혁신적이지만 난 실패하고 있는 현재의 절차가 더 편하다’는 대사가 들어 있다. 다른 인터뷰에서는 “혁신성장이 잘 안 돼 나라가 잘못되게 생겼다”고 했다. 신성장동력을 발굴한다는 취지에 공감해 정부 기구에 참여했지만,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답답한 현실에 좌절하고 만 그의 심경이 읽힌다.

바로 그날 택시업계는 서울 여의도에서 수만 명 기사와 택시를 대거 동원해 위세를 과시했다. 지난 10월 이후 세 번째 ‘카풀 반대’ 집회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과정에서 초반에 맞닥뜨린 신·구 산업 간 갈등의 대표 사례가 차량공유다. 미국·유럽은 물론, 중국·동남아까지 기존 업계의 반발을 극복하고 일상에 안착시켰지만, 국내에선 외려 역주행하는 기류다. 정부는 대화를 핑계로 택시업계 눈치만 보다 결단의 시기를 놓쳤고, 한술 더 떠 택시 월급제를 한다며 세금을 쓸 궁리를 하고 있다. 내년 경제정책방향의 16대 중점 추진과제로 공유경제를 포함하고도, 차량공유는 언급조차 못 한 비겁한 정부다. 이날 집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정치인들이 총출동해 ‘택시업계 생존권 말살하는 카풀 금지’ 등 택시 편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2013년 이후 세계 1위 우버를 쫓아내고, ‘콜버스’사업도 주저앉힌 ‘택시 불패’의 배후가 정치권이다. 택시업계는 사실상 합승제 부활과 다름 없는 ‘택시 카풀’을 대안으로 제시할 만큼 기세등등하다.

택시업계 저항에 무능 정부와 포퓰리즘 정치가 굴복한 상황 탓에 카카오 카풀 서비스 정식 출시는 무기 연기됐다. 문 대통령은 ‘붉은 깃발’을 치우긴커녕 거든 격이다. 곧 닥칠 자율주행차 시대에도 택시업계가 반발하면 또 미룰 건가. 또 다른 다음 공동창업자는 ‘구한말 쇄국’ 수준이라고 개탄했다. 이 본부장 퇴진은 혁신성장의 조종(弔鐘)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