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친구야…”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강릉 펜션 사고로 숨진 유모(18) 군의 발인이 엄수되는 가운데 한 학생이 눈물을 닦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 ‘강릉 펜션사고’ 학생 발인

유족, 운구차에 눈물 쏟아내
친구·교사들도 애끊는 배웅

“도처에 위험… 사회 바꿔야”
사고 학생 부모들 성명서도

경찰, 배기통 연결불량 수사

마지막 작별 인사를 마친 운구 차량이 서울 은평구 대성고 정문을 나섰다. 학생들은 차량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친구의 마지막 하굣길을 지켰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반복된 참사에 국민안전을 먼저 챙기겠다는 정부의 공언이 무색해졌다는 뼈아픈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숨진 학생들 발인…운구차 타고 ‘마지막 등교’= 강릉 펜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학생 3명의 발인이 21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유모 군의 발인은 이날 오전 8시 희생자 가운데 처음으로 진행됐다. 장례식장에 마련된 영결식장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예배가 진행됐다. 교복을 입은 친구 6명이 유 군의 관을 영구차로 운구했다. 유 군의 관이 운구차에 실리자 어머니 A 씨는 참았던 울음을 쏟으며 흐느꼈다. “아가, 우리 아가 어떡해… 아가야 엄마가 따라갈게”라며 오열한 A 씨는 관에 손을 올리고 기도를 한 후 결국 쓰러져 주변의 부축을 받았다. 성인이 되기까지 불과 열흘 남은 날, 유 군의 시신과 영정을 실은 운구차는 친구와 친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례식장을 떠났다.

운구차는 오전 8시 40분쯤 대성고에 들러 마지막 인사를 했다. 지난 17일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 지 꼭 나흘 만에 다시 돌아온 학교였다. 5분가량 교정과 합동분향소를 순회한 운구차가 빠져나가자 곳곳에서 참았던 울음이 탄식처럼 쏟아졌다. 교사들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제자와 작별했다. 친구들은 운구차가 지나간 내리막길을 응시하며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유 군을 배웅했다. 안모 군과 김모 군은 정오에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발인하고, 대성고에 ‘마지막으로 등교’했다. 세 학생은 경기 소재 장지에 각각 안장돼 영면에 들어갔다.

◇반복된 인재(人災), 대책 마련 요구 커져 = 이번 사고가 발생한 강원 강릉시 저동 펜션의 LPG 보일러를 무자격자가 시공한 정황이 밝혀진 가운데, 한국가스안전공사의 가스보일러 설치 규정에 배기통 보호조치 의무가 적시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스안전공사의 ‘주거용 가스보일러의 설치·검사 기준에는 ‘외력에 의해 손상될 우려가 있는 곳에 배기통을 설치하는 경우 보호조치를 한다’고 적혀 있다. 무자격자가 시공해 안전조치를 따르지 않아 사고의 원인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사고 펜션의 보일러는 배기통 이음 부위를 열에 견디는 실리콘으로 마감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지는 등 안전 문제에 소홀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201호 객실은 지난 7∼8일과 8∼9일 내국인과 외국인 관광객이 각각 1박 2일씩 숙박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7일 대성고 학생 10명이 투숙하기 전까지 상당 기간 비어 있었다. 경찰은 이 사이에 배기관 접촉 불량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원주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학생의 부모들은 서울시 교육청을 통해 “기성세대 모두가 책임을 느껴야 한다”며 “도처에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지뢰를 피해 다니는 것 같다. 이런 사회를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숙박시설의 안전장치 설치 및 관리를 의무화해 달라” “이번 정부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등 정부의 제도 개선 요구를 촉구하는 수십 건의 글이 올라왔다.

이희권·정유정·전세원 기자 leeheken@, 강릉 = 최재규 기자 jqnote9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