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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박정희 정권 시절 언론계의 한 선배가 지방에 취재를 가서 경험한 일이다. 한 지방 시청에 시장을 만나러 가 비서에게 “중앙에서 왔다”고 하자 비서의 얼굴이 하얗게 되고, 시장은 허겁지겁 뛰어나와 90도로 인사했다고 한다. 당황스러워 시장에게 “왜 그러시냐”고 물어보니 “중정(중앙정보부)에서 오셨다면서요”라고 하더란다. ‘중앙일보’를 오해해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공직 사회에서는 ‘특별’이라는 직책이 붙은 이들이 나타나면 “대감님 오셨다”며 초특급 대우를 해준다. 장관도 수시로 만날 수 있다. 이번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관으로 있다가 대검 감찰을 받고 있는 김태우 씨도 6급 수사관(주사급)이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수시로 만날 정도였다고 한다. 이들의 보고서 한 장에 따라 장관이나 고위공직자 운명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1970∼1980년대에는 한국의 FBI를 자처한 치안본부 특별수사대가 대통령 하명 사건이나 고위공직자 비위 정보 수집을 맡아 악명이 높았다. 청와대 특명사건을 담당하는 특수 1대는 사직동, 자체 기획수사를 하는 특수 2대는 신길동에 사무실을 각각 두고 활동해 이들을 ‘사직동팀’ ‘신길동팀’이라고 불렀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경찰청 조사과’로 불린 사직동팀은 청와대 법무비서관 지휘를 받았는데 ‘DJ 대선자금’ ‘옷 로비 의혹 사건’ 등으로 물의를 빚자 폐지되고 기능은 민정수석실로 이관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고위공직자 비위 첩보 수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에게 지시해 특별감찰반을 만들었다. 음지에서 이뤄지던 정보 수집을 적법하게 하겠다는 취지였는데 특감반원들은 경찰과 검찰, 감사원 등에서 12명가량 파견 나왔다. 주로 대검찰청이나 서울중앙지검 범죄정보과에 근무하던 수사관들인데, 이들이 수집한 정보가 정치인이나 재벌 비자금 사건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몰락의 발단이 된 ‘정윤회 문건 사건’도 바로 이 특감반에서 시작됐고,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 의혹도 여기서 비롯됐다. 문 정부 들어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령부 등의 국내 정보 수집이 일절 중단되고 검찰이 ‘범정’의 활동을 중지시켜 고위공직자 비리 정보는 민정수석실 특감반의 독무대가 됐다고 한다. 정보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 치명적 독(毒)이 된 사례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