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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교 국제부장

북한은 경제적으로 완전히 실패한 나라지만 파탄 직전 체제로 세계를 흔드는 유일한 국가다. 2018년 한 해 동안 북한 비핵화는 의미 있는 진전이 없었고 독재국가에 끌려다니는 모순 가득한 한반도 모습도 바뀐 것이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향을 싼 종이에선 향내가 퍼지고 생선을 싼 종이에선 비린내가 나듯이 미국과 북한, 중국이 가진 패가 무엇이고, 어떤 수를 둘지 윤곽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의중은 16일 담화에 그대로 엿보인다. 외무성 미국연구소는 “(미국이) 제재 압박과 인권소동 도수를 높이는 것으로 우리가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타산했다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은 없다”며 “싱가포르 조미 공동성명 이행에 성실히 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동성명 1항에 있는 ‘새로운 미·북 관계 수립’, 즉 종전선언과 평화협정부터 체결하라는 겁박이다. 미국의 ‘선(先) 비핵화, 후(後) 평화협정’ 원칙은 안중에 없다. 중국 역시 북한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국제정치 저능아가 아니라면 동북아에서 전체주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북한을 왜 버리겠는가. 연간 60억 달러인 북·중 교역액은 텐센트 1개 기업 매출액의 17%에 불과한 만큼 지원 부담도 크지 않다. 중국은 패권경쟁의 전략적 무기인 북한을 스스로 팽개치지 않는다.

미·북·중 3국에서 흘러나오는 발언을 따라가면 한반도가 어디로 흘러갈지 가늠이 된다. 그 이정표에는 1∼2년 내 비핵화 협상 완전타결이 어렵다고 적혀 있다. 미국의 선제타격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외과수술이기는 해도 협상 테이블이 뒤집어지고 추가 핵실험 또는 핵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벼랑 끝 전술에 익숙한 북한은 슈퍼 파워 미국의 압박과 제재를 지켜보면서도 더 이상 레드 라인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이쯤에서 감 빠른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는 14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이 비핵화 행동을 취하면 이에 상응하는 제재 완화를 미국 측에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비핵화 단계적 조치 쪽으로 한발 움직이고, 중국이 중재의 멍석을 깔면, 미국은 받아들이라는 신호다.

한반도의 비극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단계적 비핵화에 보상을 해주는 순간 제재는 휴지 조각으로 변한다. 문재인 정부는 위대한 평화의 출발이라고 외치겠지만, 북한 체제에 버팀목을 받쳐주는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불만세력을 수용소에 가두고 숙청으로 사회 통제에 나서면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 아킬레스건인 자금 문제는 가끔 비핵화 조치 중단 위협을 가해 남한 경협자금을 선심 쓰듯 받아 챙기고 다시 대화로 돌아가면 된다. 지금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의 덫을 쳐놓고 2019년 새해에 미국이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다. 북한은 1970년대 생산성 향상을 위한 천리마 운동에 실패했다.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0년대에 아사 상태로 갔다가 김대중 정부의 지원으로 살아났다. 이후 다시 만리마 운동에 나섰지만, 계획경제와 중앙배분 시스템은 결국 주저앉았다. 최대 압박과 제재를 유지하면 북한은 내부 붕괴의 길로 향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지속 가능한 국가체제가 아니다.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