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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법자’

오로지 제인 러셀을 위한, 혹은 그의 아름답고 풍만한 육체를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웨스턴 무비 ‘무법자’(사진)는 평소에 러셀을 짝사랑했던 하워드 휴스 감독이 그에게 바치는 연가(戀歌)다. 아드레날린이 넘쳐야 할 웨스턴 장르에서 러셀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슬로 모션과 하이라이팅이 쓰이는 등 다소 과한 기법이 총동원됐던 것은 모두 러셀의 완벽한 몸매를 부각하고 싶은 휴스 감독의 욕망이었다. 이 영화의 한 장면을 찍던 중 D컵이 넘는 러셀의 가슴이 예쁘게 나오지 않자 휴스 감독은 러셀의 가슴이 잘 받쳐질 만한 특수 브라를 제작해 착용시키고 촬영을 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카우보이들과 보안관이 황야를 누비는 서부극이다. 보안관 팻 개럿(토머스 미첼)은 뉴멕시코주 링컨에 그의 오랜 친구 닥 홀리데이(월터 휴스턴)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반가워한다. 재회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홀리데이는 도둑맞은 말이 인근에 있는 것 같다며 팻에게 도움을 청한다. 곧 둘은 총잡이 빌리 더 키드(잭 뷰텔)가 홀리데이의 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홀리데이는 빌리를 찾아내지만 놀랍게도 그에겐 더 이상 말에 대한 미련도 분노도 없다. 빌리의 수려한 외모에 홀리데이가 반한 것이다. 둘은 만난 순간부터 친구가 되고 모든 여정을 함께하기로 한다. 긴 시간 동안 홀리데이를 지켜주었던 팻은 빌리의 등장에 질투를 느낀다.

어쩌다 휘말리게 된 대결에서 빌리는 총상을 입게 되고 홀리데이는 자신의 애인인 리오(제인 러셀)에게 빌리의 간호를 맡긴다. 억지로 떠맡게 된 남자에게서 리오는 호감을 느낀다. 혼수상태였다가 깨어난 빌리 역시 이국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외모, 더 정확하게는 풍만한 가슴을 가진 리오에게 빠져든다(러셀의 가슴 언저리에 걸쳐 있는 클로즈업은 흔들리는 빌리의 시선까지 전달한다). 상처가 악화돼 벌벌 떠는 그에게 온기를 주기 위해 리오는 알몸으로 빌리를 품고 밤을 보낸다. 리오의 지극정성으로 빌리는 점차 원기를 회복하고 며칠 후 돌아온 홀리데이는 변화를 감지한다. 그는 배신감으로 치를 떤다. 평범한 영화적 상상이라면 이 대목에서부터 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한 두 남자의 혈투가 시작돼야 하겠지만 이 영화의 묘한 반전은 홀리데이와 빌리가 일제히 리오를 포기하면서 시작된다. 서로 리오를 양보하는 촌극이 펼쳐지는 가운데 팻이 끼어든다. 팻은 자신과의 우정을 배신한 홀리데이와 그의 새로운 관심사인 빌리를 마을에서 쫓아내고자 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김효정 영화평론가

팻의 끊임없는 이간질로 빌리와 홀리데이는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이지만 죽음의 한 발치 앞에서 빌리는 홀리데이에게 “당신이 내 첫 파트너였다”는 고백을 한다. 감춰뒀던 서로의 애정을 확인한 빌리와 홀리데이가 화해하려는 순간, 팻은 홀리데이에게 총구를 겨눈다. 그의 총알로 홀리데이는 생을 마감하고 빌리는 리오와 마을을 떠난다. 이 영화는 1943년에 완성됐지만 할리우드제작코드협회에서 러셀의 가슴이 너무 크고 두드러진다는 이유로 상영승인을 거부했다. 휴스 감독은 러셀의 가슴 장면을 몇 컷 편집했지만 이십세기폭스는 끝내 배급을 거부했다. 휴스 감독은 검열과정의 갈등을 마케팅 요소로 이용했다. 그는 곧 엄청나게 음란한 영화를 개봉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렸고 마침내 1946년에 영화가 개봉됐을 때 관객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이 영화가 입에 오르내린 것은 비단 러셀의 큰 가슴 때문만은 아니다. 성행위를 암시하는 대사들은 거의 매 장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사막으로 떠나는 빌리의 물통에 모래를 채워 넣은 리오에게 그는 벌을 줄 것이라고 말하며 덧붙인다. “하는 동안 나를 보고 있어야 해. 끝날 때까지 날 계속 쳐다 봐”. 빌리의 ‘힌트’를 읽은 리오는 묘한 미소를 보낸다.

에로틱한 대사는 빌리와 리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동성애를 암시하는 홀리데이와 빌리의 ‘파트너’ 관계 역시 서로를 사모하는 대사로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할리우드의 문제아 휴스 감독은 당대 영화 중 가장 끈적거리는 웨스턴을 만들었고 그의 작품은 후에 할리우드에서 검열이 사라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