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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서울대 교수 원자핵공학

참다못한 시민들이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 폐기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섰다. 국민의 힘으로 탈원전 정책 폐기를 이끌어낸 대만의 성공 사례를 보면서 서명운동을 통해 정부의 탈원전 정책 수정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13일 경북 울진군과 원자력정책연대 및 최연혜 자유한국당 의원 등은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범국민 서명 운동에 들어갔다. 앞서 경남 창원시의회는 문 정부의 탈원전 노선 폐기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전기료 인상론까지 나도는 가운데 시작된 서명운동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 지구촌 기후는 낭떠러지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5대양 6대주에 불고 있는 유례 없는 신재생 열풍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의 고삐는 죄지 못했다. 원조 반핵 운동가였던 제임스 한센이 원자력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최근 국제기후변화위원회는 미래는 신재생, 원자력, 탈탄소 기술을 모두 끌어안고 가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원자력 없이는 기후변화의 재앙 앞에 인류가 더 취약해질뿐더러 치러야 할 대가가 더욱 클 거라고 내다봤다.

원자력은 인류가 발명한 최대 최고의 무탄소(無炭素) 전력원이다. 게다가 기술 또한 날로 달로 좋아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폐기물과 안전성에 대한 노파심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한편 태양력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68%로 엄청나게 커졌음에도 미국의 경우 발전량의 2%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 내 99기 원전에서 나오는 발전량은 태양의 10배에 이른다. 그런데도 30기 가까운 원전이 앞으로 몇 년 지나면 멈춰 설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신재생은 원자력에 비해 100배 가까이 미연방정부의 지원금을 받았다. 만약 원전이 태양의 단 몇 분의 1이라도 보조를 받았다면 경제성 때문에 문 닫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뚝뚝 떨어지는 천연가스 가격은 탄소 배출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서부와 대서양 지역 전력시장을 뒤흔들며 무탄소 전원의 조기 폐쇄를 부채질하고 있다.

독일도 돌아가는 사정은 비슷하다. 다수의 원전이 빗장을 지르는 가운데 수십 년 혈세를 퍼부었음에도 태양과 풍력은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빈자리는 ‘시커먼’ 석탄이 메우고 있는데, 따라서 독일의 탄소 배출과 전기요금이 올라가고 있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심지어 2020년 야심 찬 탄소 저감 목표치의 백지화를 고려하는 현실도 어찌 보면 예고된 수순이었을 수도 있다.

독일과 미국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며 ‘에너지 대전환’으로 명패를 바꾼 ‘탈원전’에 요지부동인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려본다. 무탄소 전원 원자력에 등을 돌리는 것은 근시안적인 결정으로, 그 여파는 국제적으로는 물론 후세대까지 미치게 된다. 원전 수출은 과거지사가 되고, 인력 누출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더욱이 경제성과 안전성이 눈부시게 좋아지는 4세대 원자로가 바로 코앞에 있는 데도 신재생에 떠밀려 헤매고 있다면? 원자력은 이념이 아닌 과학으로 가늠해야 한다. 고집은 물에 흘려보내고 고언은 돌에 새겨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원자력은 지구상에서 한반도에서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 신재생과 상생할 것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원자력 단체와 보수 정치권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한 것은 고무적이다. 국민투표로 탈원전 정책을 포기시킨 대만을 반면교사해 정부와 여당의 정책 전환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