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차관 및 차관급 인사 16명을 한꺼번에 교체한 것은 집권 중기(中期)를 맞아 정부 쇄신 의도로 보인다. 공직사회의 심각한 복지부동을 고려할 때 일하는 분위기로 돌려놓기 위한 대책은 필요하다. 정기국회에서 예산안이 처리된 데 이어, 연말연시에 각 부처 내부의 ‘연쇄 승진’ 인사까지 단행되면 자극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효과가 있을 지는 의문이다. 공직사회 침체는 시장과 현실을 무시하고 이념을 앞세운 ‘코드 국정(國政)’과 장관 및 청와대 참모들의 무능·무책임, 그리고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청와대 비서실이 정책과 인사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전 정권 적폐청산 부작용과도 무관하지 않다. 2년 동안 최저임금을 유례없이 29%나 인상하고, 보완 대책 없이 주 52시간 근무제를 강행하는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최악의 고용참사를 불렀다. 책임을 물어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동시 경질하고 후임으로 홍남기 부총리와 김수현 실장을 기용했지만, 정책 기조에선 변화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어 도대체 뭐하러 바꿨느냐는 지적이 벌써 나온다.

읍참마속 식으로 책임을 물어야 할 인사들임에도 ‘코드 인사’들을 도로 중용하는 것 역시 문제다. KTX 탈선 사고도 오영식 전 코레일 사장만 경질했지 총괄 책임을 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 대해선 질책 한마디 없다. 업무 성과로 이름을 알린 장관이 있는지 의문이다. 정치인 출신 장관들은 기용 때부터 ‘출마 경력용’ 지적이 있었지만 그대로 강행했다. 장관을 교체하려면 청문회 등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차관 인사부터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본말전도의 궤변이다. 그런 장관 밑에서 관료로서 잔뼈가 굵은 공무원들이 어떤 처신을 할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더 고약한 일은, 3명의 청와대 비서관 및 보좌관이 차관으로 승진해 금의환향한 것이다.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책임을 지워 문책을 해도 시원찮을 상황이다. 이런데도 승진시켜 내려보내니 공무원들은 일하기보다 줄서기에 더 관심을 가질 것이다. 문 대통령이 측근 책임을 엄하게 묻는 춘풍추상(春風秋霜)을 실천하지 않으면 달라질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