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이 1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하며 정부 정책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 盧정부 때 노동부 장관 지낸 김대환

文정부, 관심끌만한 정책발표뿐
노동계·시민단체는 정치단체화
지식인들은 손해볼까 입다물어
고용·노동정책 한계보일수밖에

인구 감소가 고용 악화 원인?
장기적인 추세를 갖다붙여서야
‘일자리 정부’라면서 기업 옥좨
기업하기 좋은환경 만들어줘야

“정부의 고용·노동 정책이 구호만 있을 뿐 구체성과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인데, 현 정부는 정치적으로 관심을 끄는 정책을 발표하는 데 뛰어난 편인데 내용이 없어요. 정책이 추진되는 동안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지난 12일 공개한 ‘2018년 11월 고용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는 2718만4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만5000명 늘었다. 10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굿 뉴스’라고 자축했다. 하지만 김대환 전 노동부(현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같이 정부 정책의 맹점을 지적하며 달리 평가했다.

김 전 장관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인사들의 실력도 공부도 부족하고 모두 말로만 정책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인데, 공무원은 생존 때문에 복지부동(伏地不動)해 있고, 정부는 지나치게 노동계에 끌려다닌다고 질타했다. 필요하다면 민주노총을 제외하고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참여연대에 대해서도 이미 정치 단체화가 됐다며, 지나치게 정치에 개입해서는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경제는 순환하는 생태계이고 시장은 역동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구조적 사고가 결여된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생산은 시장으로, 분배는 정치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취업자 수 증가 폭 감소의 주된 원인으로 인구구조 변화를 꼽으면서 고용의 질(質)은 좋아졌다고 하는데.

“정부 주장대로 생산가능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구구조 변화는 장기적인 추세를 바라보는 도구다. 이를 불과 1∼2년 사이의 단기적인 고용 악화 원인으로 갖다 붙이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심지어 정부가 기후 문제 때문에 취업자 수 증가 폭이 감소했다고 밝힌 일도 있는데, 문제점을 회피하려는 변명에 불과하다. 정책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지 않고 회피하려는 태도는 국민의 신뢰를 잃게 할 뿐이다.”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어떻게 바라보나.

“소득주도성장은 사실상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분배론이다. 정부가 분배론을 성장론으로 포장해 추진하다 보니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이란 개념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현실은 매우 복잡한데, 정부는 몇 개의 구호나 단어로 현실을 설명하고 정책을 발전시키고 있다. 모두 말로만 정책을 이야기한다. 현장 전문가인 공무원들은 생존을 위해 위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고 있다. 지식인들까지 손해를 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면서도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을 옥죄는 정책을 펼친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기업이 저지른 불법이나 불공정행위에 관한 규제는 당연하다. 문제는 정부가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을 적폐로 몰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의 대기업 기부금 출연을 적폐로 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들이 적극성과 활력을 잃은 채 무언가 새롭게 시도하는 걸 꺼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기업과 기업가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부는 기업과 기업가를 구분해야 한다. 불법을 저지른 기업가를 처벌하는 일과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일은 다르다. 특히 적폐청산과 맞물려 과거 행정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은 대단히 초보적인 태도다. 지난 정부의 정책 판단을 적폐로 사고하는 것 자체가 정부 역할과 철학의 빈곤을 말해준다.”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상승해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충격을 완화할 방법이 있나.

“숨 고르기를 해야 하는데, 이미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올라 이조차도 어려운 상황이다. 영세사업주에게 일자리 안정자금을 지급하는 정책 자체가 정부 스스로 최저임금 인상이 과도하다고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주휴수당을 고려하면 내년도 최저임금은 사실상 1만 원을 넘어섰다. 최저임금 인상분을 재정으로 보전하는 정책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경제학에선 최저임금이 상승하면 경제 압박 효과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가장 큰 요인인데 이를 빼고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으면 안 된다.”

―고용세습 논란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바라보는 청년취업준비생 역시 불만이 크다.

“정규직 전환 대상인 비정규직자에게 가산점을 주고 완전히 공개채용을 하는 방향으로 가야 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존 비정규직에 가산점을 주되 취업 준비생에게도 기회를 줬어야 했다. 그렇게 진행했다면 지금처럼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허탈감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기존 노조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채용 방식이 옳은지 공론화를 해보자.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정부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실업급여 확대 등 노동시장의 안정성을 키우는 정책을 구사한다고 하나 유연성 확보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에선 유연성과 안정성이 마치 보수와 진보의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이는 정치로 다룰 문제가 아니다. 노동계는 유연성을 쉬운 해고로만 받아들이는데, 이는 극단적인 시선이다. 유연화는 임금 유연화, 근로시간 유연화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질 수 있다. 동시에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면서 유연성과 안정성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유연성과 안정성의 균형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균형을 찾아야 할 때다. 현 정부는 지나치게 노동계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 권력의 핵심이기도 한 참여연대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는데 참여연대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면.

“시민단체가 단체 명의로 성명을 발표하려면 구성원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참여연대 초기에 내가 내부적으로 가장 많이 신경을 쓴 부분도 구성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최근 참여연대는 활동가 중심으로 의견 발표가 이뤄져 정치 단체화됐다. 참여연대가 어떤 과정을 통해 활동가 중심의 경직적인 단체로 변했는지 의문이다. 노동개혁 문제만 하더라도 안정성과 유연성의 조화가 필요한데, 참여연대의 태도는 지나치게 안정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참여연대는 앞으로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과 끊임없이 교류할 필요가 있다. 동종교배는 열성 인자를 만들어낸다. 시민단체가 너무 정치 일선에 나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대내외 경제여건이 악화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현재 상황을 보면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 환경 변화도 우리에게 절대로 유리하지 않다. 경제의 역동성을 살리려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유지해야 한다. 아무리 기업가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기업 활동을 활성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노동력 수요는 파생수요다. 즉 기업의 생산력이 늘어나야 노동력 수요도 증가한다는 말이다. 근로자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경제와 노동은 한 몸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의지를 갖고 균형감 있는 정책을 통해 위기를 돌파해 나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