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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성호 중앙대 법학대학원 교수 前 외교부 인권대사

‘모든 인류 사회 구성원이 갖는 고유한 존엄과 평등하고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의 승인은 세계의 자유, 정의와 평화의 기초가 됨을 인정하며….’ 이는 1948년 12월 10일 프랑스 파리의 샤이오 궁전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전문의 서두다. 전문은 또 세계인권선언이 인권에 관한 만국 공통의 기준이라는 점, 인권의 보편적·효과적 승인과 준수 확보 노력, 이를 위한 회원국들의 유엔과의 협력 서약 등을 천명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지난 70년간 세계 시민의 인권 보장 및 자유의 확산에 향도적 역할을 해 왔다.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세계 인권의 날’ 기념사에서 세계인권선언의 의의, 대한민국 인권의 역사와 민주화 투쟁, 우리 사회의 인권 현안 등을 두루 언급했다. 아울러 “평화를 통해 인권이 보장되고 인권을 통해 평화가 확보된다”면서 “한반도에서 냉전의 잔재를 해체하고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우리 민족 모두의 인권과 사람다운 삶을 위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러한 발언은 현 정부의 인권 향상 정책과 한반도 평화 정착 노력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수령독재체제에 기반한 세계 최악 북한의 인권 상황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현 정부의 ‘북한 인권 외면’을 최고통치권자가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셈이 됐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인권선언이, 독일·이탈리아·일본의 3대 추축국(樞軸國)이 각기 내부적으로 독재체제 강화를 통해 침략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했고, 종국엔 인류를 2차 대전의 참화로 몰아넣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성안된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인권과 평화의 상관성, 특히 국내적 자유가 국제적 평화의 기초임을 갈파한 것이다.

이 같은 명제는 한반도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강고한 수령독재, 유일사상과 폭압적 인권 탄압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한이 집요하게 핵 개발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 내지 버팀목이 됐다. ‘국권(국가 자주권)이 최고의 인권’이라는 이른바 ‘우리식 인권관’도 여기에 한 몫 거들었다. 지금 북한이 고수하는 ‘자위적 핵억제력 강화 노선’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최대의 요인임은 물론이다.

나아가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와 ‘핵 인질화’ 기도는 국민의 ‘핵 공포로부터의 자유’, 행복추구권, 평화적 생존권, 안전에 대한 권리 등을 중대하게 침해한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는 북한 인권 개선 및 민주화와 함께 ‘비핵 평화’를 추구해야만 한다. 핵 폐기가 수반되지 않는, ‘말의 성찬으로 포장된 군사적 합의’로는 한민족의 인권 증진을 이룩할 수 없는 까닭이다. 문 대통령의 연설에는 이러한 문제의식들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아쉬움과 불만을 표시한다.

우리 헌법의 정신은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의 일부이므로 국가가 이들의 인권을 증진·보장하는 데 적극 나서라는 것이다. 헌법 제3조 영토 조항과 제10조 국민기본권 보장 조항이 이 같은 헌법적 논리를 뒷받침한다. 또, 헌법 제4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남북한 주민이 함께 어우러져 살면서 자유와 인권과 복지를 구가하는 통일국가를 건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헌법 정신에 충실하게 북한 인권 증진 노력을 다각도로 전개해야 한다. 침묵은 인권 탄압을 방조하는 직무유기와 다름없음을 명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