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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환 한국외대 정치행정언론 대학원장·국제정치학

내년 봄으로 예정된 한·미 연합 실기동훈련인 독수리훈련(FE)이 유예될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올해 주요 연례 한·미 연합훈련도 줄줄이 실종됐다. 한·미 공동 방위태세가 상당히 이완되고 있다. 일련의 조치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유인하는 전략적 선택일 수 있으나, 한·미 동맹의 심각한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도 이러한 소문을 확인해주는 발언을 했다. 미군은 독수리 기동훈련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 한미연합사 소속 주한미군 등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한 지휘소연습(CPX) 위주인 키리졸브(KR)연습에만 참가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비질런트에이스 훈련이 한국 공군 단독훈련으로 대체되고, 지난여름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도 중단된 바 있다.

독수리훈련 유예는 북한을 안심시키기 위해 취한 한·미 간 묵시적 합의의 산물이다. 이는 비핵화 협상의 실패를 우회하기 위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붙잡아두려는 유화책이다. 북한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면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에 갇혀 어디까지 그 요구를 수용할 것인가. 핵무기 전력 열세 상황에서 재래식 전력 우위마저 포기할 것인가. 핵무기를 개발한 북한에 대한 양보는 결코 포용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관련한 소문이 연일 난무하고 있다. 북한이 지금도 핵·미사일 증강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데다, 핵 폐기를 위한 신고·검증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환영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정부의 태도가 혼란스러울 뿐이다.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실질적인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러한 결과물을 얻기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최근 미국과 중국 내 전문가들과의 전략 대화 속에서 나온 일반적 의견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핵무기 포기 선언 없는 김정은의 답방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루하루 미뤄지는 비핵화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묵시적으로 인정해주는 길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오히려 남남갈등만 더 악화시키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독수리훈련 유예가 김정은의 답방 성사를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라면 그가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이를 활용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을 환영한 일사불란한 인공기 환영단의 모습과는 달리 김정은에게 우리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와 태도가 여과 없이 전달되게 해야 한다. 북한의 벼랑 끝 외교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이제 그 허세 외교에 농락당할 나라가 없음을 북한이 깨닫도록 해야 한다.

지난 65년 동안 한·미 관계는 혈맹으로서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현 정부의 대북 지원을 통한 비핵화 노력과 미국의 제재를 통한 비핵화 추구가 충돌하면서 동맹 관계를 뒤흔들고 있다. 북한은 새로운 남·북 관계 수립을 통해 한·미 동맹의 이완을 모색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지연이 남북 경협과 미·북 관계 개선에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북한에 주지시켜야 한다. 또한, 북한 비핵화 달성을 위해 한·미 동맹에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잠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명심할 점은, 비핵화 협상과 상관없이 우리의 군사력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억지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은 답방 시기가 화제인 가운데, 지난 주말 북한의 헬기로 추정되는 저속 비행체가 우리의 방공 전술조치선(TAL)에 접근한 일이 발생했다. 위기의 한·미 군사훈련을 직시하며, 우리 사회의 안보 공황과 정부의 굴절된 안보 인식을 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