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제주도가 녹지국제병원의 설립을 조건부로 허가했다. 2002년 김대중 정부가 관련법을 제정한 지 16년 만의 일이지만, 설립 허가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이번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 허가는 의료 민영화의 시작이고, 이로 인해 의료비 폭등으로 의료 불평등이 커지고, 건강보험 체계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반대론과, 의료 부문에 대한 투자 확대와 의료 서비스의 질적 개선과 함께 관련 일자리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찬성론이 대립하고 있다.

녹지국제병원 설립은 외국 의료기관의 설치와 감독권을 가진 제주도의 소관이고, 의료기관으로서 자격 여부도 2015년에 보건복지부가 이미 승인한 바 있다. 녹지국제병원은 합법적인 행정절차를 거쳐, 총 778억 원을 투자해 47병상 규모로 지난해 7월 완공됐고, 각종 의료 장비를 갖추고 의사와 간호사 등 130여 명의 의료진까지 채용해 개원을 기다리고 있다. 현시점에서 이를 취소하는 것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상 적절하지 않고, 녹지병원에 투자한 중국 뤼디(綠地)그룹의 반발로 한·중 간 분쟁이 발생할 소지도 있다.

원희룡 제주도 지사가 강한 반대 여론을 의식하고 있으면서 허용을 결정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제주도는 설립 반대 주장을 고려해, 녹지국제병원은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하고, 진료과목도 성형외과·피부과·내과·가정의학과 등 4개로 한정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진료 대상을 외국인만으로 한정하고 있는 허가 조건에서 영리병원이 의료 시스템에 큰 혼란을 줄 것 같진 않다.

우리 사회에서 영리병원 문제는 그 옳고 그름을 넘어서 ‘영리’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돼 왔다. 의료법에서도 의료기관은 영리적 목적으로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료를 영리적 목적으로 한다는 것은 정서적으로 바람직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공공의료가 중심인 유럽의 대다수 복지국가에서도 허용되고 있는 영리병원이 우리나라에서 터부시 되는 것은 국내 공공보건의료기관 비중이 2016년 기준 전체 의료기관의 5.4%에 불과하고, 병상 수 기준으로도 10.3%에 그치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다수인 민간병원에 대한 법적인 비영리 의무 준수와 공공 의료기관의 절대 부족 사이에 큰 간격이 있고, 이것이 영리병원 허용에 대한 불안과 공포감과 직결돼 있다.

반대와 찬성 주장의 시비를 가리기 이전에 이런 논란이, 16년 전 영리병원 개설을 허용한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똑같은 목소리와 논리로 반복적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조선시대 양반들이 현실적인 민생을 외면하고 관념적인 성리학에 의존해 소모적인 당쟁만을 거듭하던 모습이 데자뷔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나라에 있어 영리병원은 신중해야 할 중대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실험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닫힌 사회’임을 인정하는 것밖에 안 된다. 열린 사회에서는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면서 진화(進化)가 가능하지만, 창의와 자유를 제한하는 폐쇄사회는 쇠락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금은 제한된 실험을 통해 우리 의료 시스템이 새로운 변화를 발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지를 지켜볼 시점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때 가서 수정해도 늦지 않다.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도 우리 경제 규모만큼 충분히 성장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