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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 법학

요즘 사법부를 대하는 일반인들의 시각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사법부가 안팎의 거센 풍랑을 맞아 휘둘리면서 방향과 중심을 잃어가지는 않을까 염려스럽기조차 한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일반인들의 기대와 상상을 초월하는 초유의 사건들을 연일 접하게 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전임자의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을 외부 검찰의 손을 빌려 파헤치려 한 데서 사법부의 위상은 곤두박질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권의 최후 보루라고 믿어왔던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일거에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은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불을 보듯 한 노릇이었다. 집 안에서 조용히 수습해도 좋을 문제들을 외부의 손을 의탁해 해결하려는 방향 자체가 정석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여파가 이른바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이름으로 법관이 동료 법관을 입법부에 대놓고 탄핵해 달라는 사상 초유의 해괴한 일로까지 번지게 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평등한 민주사회에서 헌법기관의 권위도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사법부 스스로가 공정하고 신뢰받을 만한 재판과 사법행정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받도록 힘쓰고 애쓰지 않으면 누가 사법에 존경과 신뢰를 주겠는가? 최근 대법원장이 재판 결과에 불만을 가진 한 70대로부터 화염병 투척을 당하는 사건도 터졌다. 재판 결과에 대한 불복은 으레 있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상소 절차를 통해 해결하려 하지 않고, 예전의 석궁 사건처럼, 법관을 테러하고, 그것도 사법부의 수장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는 사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로 보인다.

이것이 우리나라 사법부의 현주소라면 국민 된 우리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요체 가운데 하나는, 개인의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 대내외의 영향력으로부터 사법권의 독립을 지키는 일이다. 그것은 저절로 주어지는,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우리 시대의 정신적 상황에 비추어볼 때 법관들이 일심 단합해도 지켜내기 쉽지 않은 것이 사법권의 독립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집 안에서 서로 물고 뜯으면서 외부의 세력을 끌어들이기로 자청한다면 오래 가지 않아 사법의 독립성은 바람벽도 없는 허약한 집이 되고 말 것이다.

마침 영국의 싱크탱크 레가툼이 매년 조사 발표하는 ‘레가툼 세계 번영지수’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올해 사법 독립성 항목에서 우리나라는 0∼1점 중 0.47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8위로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우려와 외부의 평가가 일맥상통한다는 점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사법부의 독립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또 하나,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는 법원 내 특정 단체로부터 독립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사법부 독립을 말하기 어렵다. 특정 단체가 법원 고위직을 차지하고 크고 작은 집단적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 일상화한다면 노조 같은 집단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그런 사법부에다 국민이 무슨 기대를 걸며 무얼 바랄 수 있겠는가.

불편부당하고 공정해야 할 사법이 과도하게 이념에 노출되어서는 민주주의도 자유법치주의도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만약 지금의 궤도를 수정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사법 불신과 폭력적인 재판 불복사태는 요원의 불길처럼 번질지도 모른다. 그 궤도 수정의 가장 가깝고 절실한 한 걸음을 들자면 먼저 법관들 스스로 자중하고 동료애로써 자애하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