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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부국장 겸 경제산업부장

처칠, 금본위제 복귀 홍역 치러
단호한 결단, 경제 조치로 극복
文정부 3년차 경기 전망도 험난

미래 위한 개혁 막는 敵은 내부
참여연대와 민노총의 굴레 벗고
국정책임자가 결단해야 할 시점

1924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하자 윈스턴 처칠이 재무장관에 임명됐다. 눈앞의 현안은 통화 가치를 금값에 연계하는 금본위제로의 복귀였다. 전쟁을 치르느라 파운드화를 마구 찍어내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게 이유였는데, 중앙은행인 영란은행과 런던 금융가는 물론 대중까지 “대영제국의 영광을 재현해줄 것”이라는 말에 현혹됐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금의 대부분이 미국으로 이동한 상황을 주지시키면서 “파운드화는 금이 아니라 달러에 종속될 것”이라고 반대했으나, 처칠은 여론에 밀려 1925년 4월 금본위제 복귀를 공식 선언했다.

그게 큰 실수였다. 파운드화는 달러보다 고평가돼 있었고, 통화가치를 유지하려면 긴축을 해야 했다. 그 결과 주력 산업이 가격 경쟁력을 잃어 수출에 큰 타격을 입었다. 공장들은 문을 닫았고, 실업자가 넘쳤다. 석탄 광산 파업이 치명타였다. 처칠은 고심 끝에 ‘환호하던 대중’과 결별하기에 이르렀다. 6개월 동안 강경한 자세로 타협을 끌어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조치도 단행했다. 대중이 반대하던 재산세, 지방세 인하도 포함돼 있었다. 그게 온전히 영국 경제를 회복시키진 못했지만, 이후 그가 10년 야인 끝에 총리로 돌아와 박수를 다시 받게 된 계기가 됐다. 처칠은 “금본위제는 우리를 파멸로 이끈 덫”이라며 후회했다고 한다.

지도자에게 양단(兩斷)의 결정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러할 것이다. 정부 출범 3년 차가 되는 2019년 한국경제 전망이 암울하다. 연구기관들이 줄줄이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낮춰잡고 있다. 안팎 사정이 모두 비관적이다. 밖을 보면 세계 경제가 꺾였다. 유럽·일본·중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하강 국면이 전개될 참이다. 한국 수출에 호시절이 갔다는 얘기다. 안으론 민간소비와 투자 부진 전망에 이견이 없다. 무슨 변명을 하건 최저임금 급격인상을 필두로 한 소득주도성장론(포용성장)의 무모한 실험, 줄기찬 반(反)시장 정책으로 인한 기업 투자 활성화 실패 탓이다.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던 정책들이 되레 고통만 안겨주는 덫이 돼버렸다.

내리막길에 들어선 경기를 단숨에 반전시킬 묘책은 없다. 이미 실기(失期)했다.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변수도 없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결정을 우리 뜻대로 조종할 수도, 미·중 무역 갈등을 봉합시킬 처지도, 공급 과잉의 반도체를 흡수할 수도 없다. 이제 남아 있는 방법, 제힘으로 할 수 있는 건 ‘내 안의 적(敵)’을 통제하는 것뿐이다. 문재인 정부 어젠다 가운데 ‘과거와의 전쟁’, 이른바 적폐 청산을 제외하면 ‘미래를 위한 전쟁’, 즉 사회·경제 구조개혁을 가로막은 건 권력 내부였다. 그 축은 두말할 것도 없이 참여연대와 민주노총이다.

애초 참여연대는 일개 시민단체가 아니었다. 그곳 출신들이 청와대, 국회, 행정부 요직에 앉았다. 게다가 동업자 인식에서 중요한 국정 사안마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간섭해왔다. 공무원들이 그 눈치를 보는 풍조가 만연됐다. 참여연대는 심지어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에게 질의서를 발송했다. 후보자의 입장을 물었다는 건 형식일 뿐, 제 뜻을 거스르면 레드카드를 들겠다는 엄포다. 거기엔 공정거래법 강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 처리, 차등의결권 허용방안 철회, 자본이득 과세 강화 등이 들어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과도한 반시장, 반기업정책뿐이다.

민주노총은 친(親)노동 기조에 힘입어 세를 불리고 안하무인의 위세를 떨치고 있다. 정부가 어렵사리 추진한 탄력 근로제 확대를 반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자리 나누기’로 도입된 임금피크제까지 되돌리려 한다. 일자리 창출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도 모자라, 앞에선 ‘촛불 정신’ 피켓을 들고 뒤로는 조직폭력배 수준의 갑질을 한다.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기업 임원을 뭇매질하고, 건설 공사장마다 ‘일자리를 내놓으라’며 근로자와 사업장에 행패를 부린다. 그들이 정권창출의 일등공신이었다는데, 국정이 포획된 지금도 과연 그러한가.

국정 최고책임자가 결단해야 할 시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놓고 갈라섰던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건, 극복 과제이지 경계로 삼을 게 아니다. 성공한 정부의 제1 요건은 외치가 아니라 내치요, 바로 경제다. 결별해야 경제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