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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학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현직 법관에 대해 사법부를 불신하는 국민 여론을 감안해 탄핵소추도 검토돼야 한다는 안건을 지난 20일 의결했다. 법관회의는 과거 법관들의 자치 기구의 성격을 띤 비공식 기구였지만, 2018년 대법원 규칙이 제정되면서 사법부의 법정 기관이 됐다. 그렇다면 이 회의에서 의결된 안건은 전국 법관들의 공식적인 견해가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법관회의가 문제가 된 법관들에 대해 탄핵소추 건의를 의결했다고 하는데, 이런 안건을 논의하고 결정할 권한이 법에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관회의 규칙은 제6조에 회의의 임무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그 제1항에는 사법행정 및 법관 독립에 관한 사항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거나 건의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또한, 제2항과 제3항은 필요한 경우 사법행정 담당자에게 설명, 자료 제출 또는 그 밖의 필요한 협조 요청을, 그리고 사법행정 담당자의 출석과 설명을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의결된 안건은 제6조 제1항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조항은 사법행정 및 법관 독립에 관한 사항에 대해 의견 표명 내지 건의만 규정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법관회의는 탄핵소추의 안건에 대해 표결을 통해 결정했다고 한다. 아마 법관회의는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 건의안이 사법행정 남용 문제이기 때문에 포함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탄핵소추 건의가 법관회의의 임무를 규정하고 있는 이 조항을 근거로 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관회의는 대법원 규칙의 제정으로 법적 근거를 갖게 됐다고는 하지만, 헌법과 법원조직법에는 명확한 근거 조항이 없다. 먼저, 헌법을 보면 제108조에 대법원의 규칙 제정권을 규정하고 있는데, 대법원은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소송에 관한 절차, 법원의 내부 규율과 사무 처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이 헌법 규정에 따르면 대법원이 규칙 제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는, 법률 내에서 소송 절차, 내부 규율과 사무 처리다. 법원조직법에는 2014년 신설된 제9조의2의 판사회의가 있다. 법관회의는 각급 법원에 사법행정의 자문기관으로 설치된 법원조직법상 판사회의는 아니다.

법관회의는 전국의 각급 법원을 대표하는 법관들이 모여 구성된 기관이다. 그런데 이 기관의 설치를 규정하고 있는 대법원 규칙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법원의 규칙 제정권의 범위에 속하지 않으며 법원조직법에도 근거 조항이 없다. 그래서 이 기관을 대법원 규칙으로 만들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법부를 구성하는 법원 조직에 대해서는 헌법 제102조 제3항에서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법원은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법 조직이다. 법관은 헌법 제103조에 따라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해야 한다. 이 조항이 사법부의 독립, 법관의 독립 또는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는 규정이다.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법부의 독립이 확보돼야 한다.

사법의 정치화는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하고 공정한 재판을 불가능하게 한다.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 건의나 요구는 국민이나 시민단체의 몫이지 법관이 건의할 사안은 아니다. 법관들이 문제가 있다고 보는 동료 법관들을 탄핵소추의 대상으로 보아 이를 건의하는 것은 권력분립 원칙이나 사법부 독립을 훼손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법관이 국민 여론을 고려하면 법에 의한 공정한 재판은 불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