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년 반을 넘긴 문재인 대통령이 전체 국민을 대변하는 국정을 펼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당선에 기여한 세력에 얹혀 그들의 요구에 굴복할 것인지의 기로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 진행되는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을 둘러싼 충돌은 단순히 이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 대통령과 ‘지지 세력’의 힘겨루기 성격도 가미돼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일 여야 5당 원내대표와의 상설국정협의체 첫 회의에서 12개항에 합의했는데, 제2항에 ‘기업의 어려움 해소를 위해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등 보완입법 조치를 마무리한다’는 약속이 있다. 이에 따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탄력근로 단위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 또는 1년으로 연장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문 대통령은 또 오는 22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불참하더라도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이런 문 대통령의 드라이브에 ‘좌파연대’라고 부를 만한 세력들이 총결집해 저항에 나섰다. 문 대통령 집권에 민노총·전국교직원노동조합·참여연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학생운동권·정의당 등 진보·좌파 세력이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촛불 세력’으로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도 실제로 주도했다. 현 정부 요직을 노동계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민변, 학생운동 출신이 차지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민노총은 최저임금·주 52시간 근무·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전리품’으로 얻었고,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국민연금 보장성 강화 등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국정을 책임진 문 정부가 그런 요구만 들어줄 수는 없다. 문 대통령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중반 지지층과 충돌하면서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한·미 동맹 강화, 경제 도약을 위해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꼭 필요했지만, 노동계 등이 극렬히 반대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핵심 지지 세력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익을 선택했다. 그 때문에 정권이 흔들렸지만, 지금 돌아봐도 올바른 선택이었다. 문 대통령도 똑같은 딜레마에 빠졌다. 탄력근로 등과 관련해 지지층 요구를 받아들이면 경제가 흔들리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권이 흔들릴 것이다. 문 대통령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좌파연대 대표가 아니라 국가지도자로서의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