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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국내 주요 기업들의 3분기 실적을 보니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아 너무 걱정스럽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년도 경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다 환란(換亂)보다 훨씬 어려운 경제위기가 올지 모른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맸던 1997년 외환위기와 2018년 현재의 경제 상황은 과연 어떻게 다른가? 불행히도 현재가 훨씬 더 어렵다고 진단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한국을 제외한 외국 시장의 사정이 너무 다르다. 1998년에는 우리와 일부의 동남아 국가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경기가 바닥을 찍었지만, 한국 기업이 주로 수출하던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해외시장은 매우 경기가 좋았다. 하지만 2018년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수출시장인 중국의 경기 상황이 상당히 어렵다. 6%대의 성장률을 발표하고 있지만, 중국의 내수시장은 전혀 상황이 다르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을 제외한 유럽 시장 역시 상황이 좋은 편은 아니다.

둘째,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전혀 다른 상황이다. 1998년에는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800원대에 이를 정도로 급속히 평가절하됐기 때문에 아주 짧은 시간에 한국 기업이 수출하는 제품들이 해외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현재는 미국이 원화 환율에 대해 시시각각 지켜보고 있으며, 유럽과 일본의 적극적인 양적완화 정책 때문에 오히려 일본 엔화가 원화보다 훨씬 평가절하돼 있다. 2018년 현재의 환율 상황은 한국 기업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셋째, 개별 기업 단위로 살펴보면 주요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1998년에는 한국 경제가 비록 전대미문의 위기를 겪는 처지였지만, 주요 수출 기업들이 보유한 제품 경쟁력은 선진국 대비 상당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우호적인 환율과 함께 상당한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해외시장에서 적극적으로 매출을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20년 전과는 달리 현재 한국 경제는 무서운 가격 경쟁력을 보유한 중국이라는 경쟁자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넷째, 국내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소비 여력이 너무나 다르다. 20년 전 가계부채는 불과 200조 원에 정도였던 반면, 가계저축률은 20%가 훨씬 넘었다. 하지만 2018년 현재 한국 가계들이 저축하는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인 5.3%에도 훨씬 못 미치고, 선진국 중에서는 거의 최저 수준이다. 가계부채 역시 이미 2000조 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 정부가 내수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싶어도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다섯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미래 성장 엔진이 될 수 있는 인공지능(AI) 및 빅데이터 기술에 있어서도 한국은 이미 중국에 뒤지고 있다. 새롭게 태동하는 시장에서 최고의 경쟁력이 있으면 현재보다 미래가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 경제는 오히려 정반대 상황이다.

끝으로, 더욱 걱정스러운 점이 있다. 1998년에는 경제 위기 해결에만 몰두하는 대통령이 있었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온 국민도 금모으기운동으로 정부 정책을 온몸으로 따랐다. 하지만 지금 정부에는 20년 전과 같은 모습이 없다. 청와대는 경제보다 남북 관계와 외치가 중요한 상황이고, 새 경제팀이 들어서지만 경제 위기를 해결할 전문가는 보이지 않는다. 국민은 누구를 믿고 새해를 맞이해야 할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