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벽화로 그려진 웹툰의 스토리가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강동구 성내동 ‘승룡이네 집’

10년 만에 외국에서 돌아온 지호, 마을 입구에서 동네바보인 승룡이를 만난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연탄가스 중독으로 뇌 손상을 입은 승룡이에게 몰래 들었던 지호의 피아노 소리는 유일한 기쁨이었다. 바보 취급당하는 승룡이를 도와주는 상수, 상수를 좋아하는 희영, 이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순수한 사랑이야기는 인기 웹툰 작가인 강풀이 그린 ‘바보’의 내용이다. 1세대 웹툰 작가인 강풀은 강동구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바보’의 승룡이가 외국에 있는 지호를 그리워하며 앉아 있던 동네 토성도 풍납토성이 배경이다. 그렇다면 승룡이의 이야기 배경이 된 마을도, 승룡이가 살던 집도 실제로 있을까?

강동구 성내2동에는 ‘바보’의 주인공인 ‘승룡이네 집’이 있다. 2013년 강동구에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강풀 작가의 협조를 얻어 웹툰의 배경이 됐을 만한 동네를 찾아 ‘강풀만화거리’를 조성했다. 처음에는 노후한 주거환경을 개선할 목적으로 웹툰의 이야기를 벽화로 그리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좋자, 4년 뒤 만화거리의 거점 공간인 ‘승룡이네 집’이 마련됐다. 물론 실제로 살았던 집은 아니지만 문 앞에서 승룡이 캐릭터가 반겨주는 이 집은 방문객들의 안내소이자 마을 주민들의 공동체 활동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강풀만화거리를 찾아온 사람들로 붐비는 1층 카페에서는 손님맞이와 함께 주민들을 위한 바리스타 교육과 홈 베이킹 교육을 수시로 열고 있다. 만화로 가득 채워진 2층은 주민들의 모임이나 활동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영화상영과 우쿨렐레, 요가 같은 주민들을 위한 문화프로그램들을 제공하고 있다.


강풀만화거리에는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 시리즈 중 ‘바보’ ‘순정만화’ ‘당신의 모든 순간’ ‘그대를 사랑합니다’ 네 편의 이야기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강풀 작가의 웹툰은 영화로도 제작될 정도로 잘 알려졌지만, 웹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벽화해설사가 안내하는 벽화투어를 이용하면 된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정규투어가 진행되고 3인 이상이 신청하면 언제든 투어가 가능하다. 강풀만화거리에는 벽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변종업소를 구에서 임차해 만든 청년작가공방인 ‘엔젤공방’에서는 예쁜 작품들을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벽화를 따라가다 보면 큰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마을 속의 정겨운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좁은 골목, 허름한 대문을 배경으로 붉은 열매를 힘겹게 달고 있는 감나무와 동네 가게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세련된 카페와 음식점들은 만화거리가 주는 두 번째 기쁨이다. 얼마 전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소개된 가게 앞, 길게 선 사람들 사이로 밝게 웃고 있는 승룡이의 모습이 만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글·사진 =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