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11∼12일 북한에 제주산 귤 200t을 보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평양 정상회담 기념으로 보낸 송이 2t에 대한 답례 성격이라고 한다. 적대 관계에 있더라도 대화하고 선물을 주고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올 들어 남·북·미 사이에 다양한 이벤트가 있었지만, 북핵 폐기를 위한 실질적 첫발조차 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핵 문제 협상을 ‘위임’한 미국의 경우,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의심하면서 유엔 차원의 인도적 대북 지원까지 저지하는 등 압박 강도를 더욱 높이는 실정이어서 엇박자도 심각하다.

이런 대규모 선물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에 직접 위반되지는 않을 수 있지만, 그 취지를 현저히 희석하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정부가 공군 수송기를 동원한 것도 그럴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비친다. 그 비용도 남북협력기금이 아닌 청와대 예비비나 대통령 특수활동비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선물 교환 방식을 확대하면, 남북이 물물교환 형식으로 더 많은 물자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문 정부는 철도·도로 연결, 개성 연락사무소 개설 등과 관련해 대북 제재를 우회해 지원하려 한다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아왔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9일 워싱턴포스트에 보낸 기고문에서 “북한에 대해 외교·경제적 압박을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례 없는(unprecedented)’ 수준을 강조해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은, 유엔 산하 인도주의 지원 단체들의 지원 승인 요청도 불허하고 있다.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려면 유엔 대북 제재위원회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정부는 미·북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만큼 남북 관계 개선을 견인하거나 김 위원장의 답방을 촉진하기 위해 귤을 보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 과속은 동맹을 해치고 북핵 폐기도 늦출 뿐이다. 미 의회조사국(CRS) 전문가는 “한·미 동맹은 표면적으로 안정적이나 물밑에선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