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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어진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해 정부가 다시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대통령이 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 개편안 초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평가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되는 국민연금 개혁 관련 갑론을박을 따라가다 보니 중요한 오해들이 있는 것 같다.

먼저, 국민연금이 나름 타당성을 갖고 기능하고 있다고 보는 것 같지만, 제도의 효과 측면에서 보면 이는 오해다. 국민연금의 본질은 자신이 낸 기여금을 되돌려받는 저축성 보험이라기보다는, 미래 세대가 현재 세대의 노후 빈곤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지는 복지 프로그램의 성격이 크다. 복지 프로그램으로서 자원 배분을 정부가 강제로 하는 것이어서, 원래의 이상적인 상황은 미래의 부유층이 현재 빈곤층의 노후 빈곤에 대해 부담을 안도록 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전반적으로 미래 세대의 중산층·빈곤층이 현재 세대의 부유층·중산층을 부양하는 형태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공적연금 제도의 핵심적인 가정은, 경제성장과 기술 발전의 양상을 고려할 때 미래 세대는 부유하고 국가정책의 혜택을 많이 받은 세대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미래 세대는 현재 세대에 혜택의 일부를 이전하는 게 공평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1980년대 이후 더는 맞지 않는 상황이 됐고, 대다수 선진국이 대대적인 연금 개혁을 추진하는 이유가 된다. 연금 제도에 있어서 후발국인 우리나라의 경우 숙고 없이 외국의 연금 제도를 모방하다 보니 미래 세대가 현재 세대에 비해 그다지 부유하지도 풍요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고도 성장기의 과실을 다 누린 현재 세대에 자원을 이전하는 메커니즘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미래 세대의 중간 이하 계층의 돈을 거둬 1980년대 후반 국민연금에 가입한 중산층 이상의 정규직들과, 부동산 등 자산 가치 상승의 과실을 다 누린 부유층에 지원하는 기형적인 구조임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다음으로, 국민연금의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적립금을 지급하는 형태에서, 당 시점의 노동계층인 현재의 미래 세대가 바로 당시의 노후에 처해 있는 현재의 근로계층에 직접 전달하는 부과식으로 바꾸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오해가 있다. 이와 더불어 미래에 정부가 재정을 조금 지원하면 큰 문제 없이 제도가 유지될 수 있고 따라서 미래세대도 충분히 그다음 세대로부터 부양을 받을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오해를 넘어 의도적인 곡해가 아닌가 한다. 적립식 연금에서 부과식 연금으로 전환한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이 과정에서 상당한 연금 수급의 감액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우리나라도 현재 세대에 매우 유리한 공식을 유지하면 부과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재정적 부담을 근거로 연금수급액을 대폭 감액할 수밖에 없다. 이는 선진국들이 다 경험한 일이고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지금 노동시장에 갓 진입한 20대들은 국민연금 납부는 하되 그 혜택은 많이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될 게 분명하다. 반면, 지금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한 1950년대 생부터 1970, 1980년대 생까지는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된다.

이런 상황을 바꾸는 길은 현재의 ‘저부담 고수령’의 구조를 ‘고부담 저수령’의 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그래야 세대 간 공평성, 지속 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