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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희 소설가

얼마 전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한국의 ‘홀로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유엔 세계 고아의 날’ 제정 청원대회가 열린 날이었다. 수선화합창단과 러브플러스로 구성된 아이들의 노래는 그곳에 모인 세계 각국 대표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날 노래를 부른 아이들은 공생원과 재활원 원생들로 세상에서 가장 힘없는 아이들이 노래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세상에 자신들의 소망을 전한 것이다. 아이들의 노래는 맑고 울림이 깊었다.

공생원은 국토의 남단 전남 목포에 있는 고아원으로, 일제강점기에 윤치호 전도사가 일곱 명의 아이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생긴 유서 깊은 아동 시설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6·25전쟁 당시 실종됐고, 그의 뒤를 이어 고아원을 떠맡은 일본인 아내 윤학자 여사가 57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3000명의 고아를 길러낸 곳이 바로 공생원이다. 그의 소원은 고아가 없는 세상이었다. 목포시에서는 그의 장례를 첫 시민장으로 치러주었고, 공생원을 책임지게 된 그의 아들에게는 고아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 보라고 주문했다. 엉겁결에 미혼 상태로 고아들을 책임지게 된 윤기 원장은 고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공생원에서 태어나 고아들과 함께 생활하고 일본의 한 고아원에 근무하던 아내를 만나 고아원에서 결혼하고 고아원으로 신혼여행을 갔으니, 어쩌면 고아를 위한 삶이 그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순간에도 기아와 질병, 전쟁과 기후변화, 가정 파괴와 사고 등으로 고아가 양산되고 있다. 2018년 현재 세계의 고아 수는 약 1억5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유엔 세계 고아의 날’ 제정은, 세상에서 가장 힘없는 아이들의 인권과 생명의 소중함을 상기하고 함께하자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고아들 역시 존엄한 하나의 생명이고, 인격체다. 그들의 인권 또한 존중받아야 하며 그들에게도 공정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세상의 평등과 정의는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질 때 실현된다. 그러니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도 온전하면서도 제대로 된 교육과 양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일회적이고 동정적인 시선보다는 이들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 이를 위한 제도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가의 관심과 개입이 필요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우리에게는 6·25전쟁으로 수많은 고아가 생겨났던 아픈 과거가 있다. 게다가 한국은 세계 최대 고아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이제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으니 고아들을 위한 지원에 앞장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지난 상처와 최대 고아수출국이라는 불명예를 지우는 일이 될 것이다. 음악의 거장 바흐, 명품 시계인 롤렉스의 창업자 한스 빌스도르프, 3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든 백만장자 데이비드 부소, 2007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마리오 카페키 미국 유타대 교수, 한국계 미국인으로 동양인 최초 미국의 주 상원의원이 된 신호범 박사, 가게 점원에서 세계적인 기업가로 성장한 백성학 사장, 한국의 폴 포츠로 불리는 세계적 성악가 최성봉….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고아였다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성장해 어떤 꽃을 피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아이들 역시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품고 있다. 그러니 아이들의 미래는 국가의 미래이며, 인류의 미래이지 않겠는가. 유엔본부 앞에서 많은 사람의 마음을 모아 제정 청원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으니, 부디 ‘유엔 세계 고아의 날’이 제정됐으면 좋겠다. 그것은 결국 고아들만을 위한 날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