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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열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교수

남북교류협력기금이 조성된 지 어느덧 30년 가까이 돼 간다. 그동안 북한에 비료와 식량 지원 등 인도적 지원을 비롯해 북한 신포지역 경수로 건설에도 협력기금이 사용됐다. 남북관계의 부침에 따라 교류협력사업과 기금 사용에도 기복이 있었는데, 현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급진전을 보임에 따라 향후 기금 운용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된 기금 예산이 15% 인상된 것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정부·여당으로서는 현 정부 들어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약속한 각종 사업을 조속히 이행하기 위해 기금의 대폭적인 증액을 요청하는 것이고, 기금 사용의 적정성과 적실성을 문제 삼는 야당으로서는 퍼주기성 예산이라 이를 대폭 삭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야를 떠나 연간 1조 원이 넘는 교류협력기금이 구호와 민생 협력 등 일방적 지원 사업에 집중 편성됐기 때문에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동시에, 이 같은 기금 지출이 국회의 동의를 요하지 않기 때문에 방만하게 운영되거나 무책임 또는 부적절하게 사용된 데 대한 개선책도 마련해야 한다. 기금은 대북 비료 지원 때에는 분배 투명성을 조건으로 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대규모 식량 지원은 무상에서 유상으로 바꿔 기금을 통해 장기 차관으로 제공했으나 상환 기한이 훨씬 지났는데도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기금을 통한 남북경협 기업에 대한 지원 역시 대상과 기준이 들쑥날쑥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결정됨으로써 기업의 윤리나 건전한 시장경제 기반을 훼손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각종 남북 민간 교류협력 사업에 대한 지원 여부도 기금의 조성 취지에 합당한지 재검토가 필요하다. 또, 남북 철도 연결사업에 기금이 사용될 경우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규정에 저촉될 수 있으므로 이를 내년 예산에 편성하는 게 옳은지 여부를 국회에서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기금 예산 편성과 관련해 변화한 남북관계와 변화할 남북관계를 전략적 차원에서 검토하되 교류협력기금을 주관하는 통일부도 기금추진협의회의 구성과 운영을 전향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정부 측 위원들 외에 민간 위원들의 경우 중립적 인사를 다수 포함시켜야 한다. 친정부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이산가족 상봉사업이나 개성공단 중단에 따른 기업들의 피해 보전에 기금을 사용하고 평창동계올림픽이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등에도 기금이 적잖게 지출됐는데 이에 대해 사전 또는 사후에 충분히 타당성 검토를 했는지, 제기된 문제들의 개선책들이 투명하게 논의됐는지 의문이 든다.

남북교류협력기금이 매년 1조 원 가까이 조성되면서 현재 총 기금이 14조 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기금은 그 자체를 운영하는 데 비용이 소요되고, 또 관련 노하우가 필요하다. 향후 본격적인 남북 교류협력시대에 접어들면 기금 조성이란 방식 대신에 정규 예산에 편성,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 교류협력기금으로 조성된 막대한 예산을 북한 당국자들은 그들을 위한 예산으로 간주해 그 지출을 공공연하게 압박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전략적으로 북한을 대화와 교류협력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선심성 예산을, 그것도 사전에 기금에 배정해 놓고 북측과 협상한다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는 점을 교훈으로 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