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맛·감성자극… 흔한 것을 흔하지 않게 그려내”

이미지 크게보기 한입 베어 물면 바로 단물이 주르르 흐를 것 같은 윤병락 작가의 그림 속 사과 들. 작품 제목은 ‘가을향기’(213.5×89.7㎝)이며 한지에 유화물감으로 그렸다. 노화랑 제공

윤병락, 사과그림 15년… 평론가가 말하는 ‘완판’ 비결

극사실주의 계열 구상화 21점
내일부터 인사동 노화랑 전시
14점은 벌써 컬렉터들 先매입

변형 캔버스에 입체감 살려내
韓紙에 유화… 한국정서 구현

‘단색화’로 대표되는 추상이 대세인 한국화단에서 윤병락(사진) 작가의 존재는 그 자체로 유니크하다.

그는 사과를 그리는 ‘구상화가’다. 흔히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빨간 사과, 푸른사과가 그의 작품 소재다. 그리고 사실적으로 화폭에 사과를 재현해 낸다. 작품 소재와 기법은 평범해도 수많은 컬렉터는 그의 작품에 열광한다. 전시만 열리면 ‘완판’(컬렉터들이 전시 작품을 모두 사주는 것을 의미)되고, 차후 주문까지 쇄도한다.

윤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노화랑에 들어서면 맛깔스럽게 잘 익은 사과들이 ‘진한’ 과일 향을 풍기는 것 같다. 빨간색과 녹색 사과는 너무나 생생해서 꺼내서 먹고 싶을 정도다.

윤 작가의 사과 그림이 갖는 매력의 비결이 바로 그 점에 있다. 화랑 전시는 7일 시작해 20일 끝난다. 그런데 전시가 시작되기도 전에 21점의 작품 가운데 14점이 컬렉터들에게 팔렸다. 평론가 3인이 윤 작가 사과 그림의 인기비결을 짚어 보았다.

◇금방이라도 궤짝에서 쏟아질 것 같은 현장감 = 미술평론가인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윤 작가의 작품에 대해 “정물화적 관점에서 사과를 놓고 그리는 대신 사과 궤짝에 담아 그려 사실감을 더 살렸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사과의 입체감을 높이기 위해 변형캔버스를 사용하는 것도 강점이라고 말했다. 변형캔버스는 사과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결정하고 그 윤곽선에 따라 합판을 자른 것을 의미한다. “그처럼 제작된 그림을 벽에 걸어 놓으면 금방이라도 사과가 궤짝에서 쏟아져 내릴 것 같아요. 현장감 있는 연출의 일종이죠.”

◇그림 보는 맛에 장식성까지 가미돼 = 미술평론가 서성록 안동대 교수는 윤 작가의 사과 그림에 대해 “그의 그림을 보고서야 우리는 매일같이 대하는 사과가 얼마나 근사한지 또 우리가 얼마나 멋진 세상에 살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풍요로움, 수확의 기쁨 등 현대인들이 잊고 사는 감성이 사과 그림을 통해 분명히 드러나고 있어요. 현대미술이 대부분 논리적, 분석적인 것과 달리 그의 작품은 순수하게 보는 즐거움, 장식성 등을 제공하죠. 여기에 한지에 유화물감으로 작업, 한국인 정서에 맞춘 것도 컬렉터들이 그의 그림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사과를 보는 새로운 관점 제공해 = 울산시립미술관 팀장으로 미술평론도 하는 임창섭 씨는 윤 작가의 그림이 “사과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컬렉터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과는 흔한 과일이죠. 그래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아요. 무관심하죠. 그래서 사과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도 드물죠. 윤 작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사과의 색감과 맛의 느낌 같은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사과보다 더 사과 같은 사과 그림’이라고나 할까요.”

윤 작가는 사과가 많이 나는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그렇다고 화단에 데뷔해 처음부터 사과를 그린 것은 아니었다. 구상화의 본고장인 대구에서 그림 실력을 갈고닦으며 가마솥 뚜껑, 가위 등의 극사실화를 그렸다.

사과 작가로의 변신은 2004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마니프서울국제아트페어에서 사과 그림이 주목을 받으면서부터다. 2007년 옥션에서 30호짜리 ‘풋사과’가 1250만 원에 낙찰되면서 스타 작가 대열에 뛰어올랐다. 그리고 작품값도 뛰기 시작했다. 이후로 그는 사과를 계속 그리고, 매년 사과 그림 전시를 열고 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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