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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선글라스는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정도의 생필품이다. 11세기 송나라 때부터 사용됐다는 설도 있지만, 현대에는 1937년 미 공군이 조종사들의 시력 보호를 위해 바슈롬사에 요청해 만든 ‘레이밴’이 선글라스의 시초로 알려지고 있다. 원래 강한 햇볕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본모습을 감추는 데 활용되는 등 용도가 다양해졌다. 연예인들은 햇볕이 없어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착용하곤 한다.

정치인들의 ‘소품’으로도 많이 활용된다. 가장 강렬했던 것은 1961년 5월 18일 당시 5·16쿠데타를 주도한 박정희 육군 소장이 선글라스를 끼고 박종규 소령, 차지철 대위를 좌우에 거느린 채 서울시청 앞에서 육사 생도들의 쿠데타 지지행진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다. 박 전 대통령은 그해 11월 미국을 방문,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날 때도 선글라스를 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생전에 외부 행사나 중국 방문 때 선글라스를 즐겨 꼈는데 비슷한 심경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은, 1968년 6월 부산 해운대 극동호텔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김종필 전 총리의 선글라스에 바둑알이 반사된 사진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초청으로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했을 때 낀 선글라스가 화제가 됐다. 대구에 있는 업체가 제작한 이 선글라스는 그 뒤 중국에서 ‘파오다제 (박근혜 큰 누님) 선글라스’로 알려지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후보 시절 독일을 방문하면서 선글라스를 착용한 사진이 화제가 되면서 ‘박정희 흉내 내기’ 구설에 시달렸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선글라스는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문재인 대통령 유럽 순방 중에 국가정보원장과 국방·통일장관 등을 대동하고 비무장지대를 시찰했는데, “대통령 행세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비서는 나서지 않는 게 정도(正道)다. 평소 햇볕에 눈이 약해 선글라스를 자주 끼는 임 실장은 이날 군 PX에서 판매 중인 2만 원짜리를 구해 낀 것으로 알려졌다. 사연이 어떻든 좋은 모습은 아니다. 그래도 대놓고 비판하면 오히려 ‘박정희급’으로 키워주는 셈이어서 야당도 고민이라고 한다. 임 실장의 선글라스가 정치적 장래에 약이 될까, 독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