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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사회정책학

인적자본지수 2위 오른 한국
교육 경쟁 격화가 저출산 불러
그래도 장점은 최대한 살려야

채용 불공정은 청년 희망 꺾고
잠재력을 물거품 만드는 폐습
노동시장 시급히 바로 잡아야

이번에 세계은행(WB)이 발표한 2019년 세계 인적자본지수에 따르면 한국이 조사 대상 159개국 중 2위를 차지했다. 싱가포르가 1위에 올랐고, 뒤를 이어 일본이 3위, 홍콩이 4위를 차지했다. 이어서 교육의 질적 수준뿐만 아니라 만족도에서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 핀란드가 5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인적자본지수가 세계 최고의 수준을 달성했으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석유나 가스 등 천연자원이 거의 없는데도 과거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우수한 인적자원 덕분이었다. 앞으로도 이같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인적자본을 활용해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리고 경제 발전을 도모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매우 밝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노동시장 현실을 돌아보면 그렇게 장밋빛 미래를 자신할 수만은 없어 안타깝다.

세계은행의 인적자본지수는 교육·보건·사회적 여건과 현실을 반영해 현시점에 태어난 갓난아기가 18세에 이르렀을 때 소유한 인적자본을 표준화한 상대 수치로, 세계 각국 인적자본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은 1∼4위를 차지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 한국의 2017년 출산율은 1.05로 세계 최저 수준이며, 당장 내년부터는 생산 가능 연령대 인구의 감소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대학입시에서 치열한 경쟁과 막대한 교육비용 때문에 출산을 기피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아시아 국가들은 인적자본의 양보다는 질을 선택한 모양새가 됐다.

그렇다면 이 같은 양질의 인적자본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하는지에 따라 미래 경제발전의 가능성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20대 청년실업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최근에는 9%대를 웃돌고 있다. 높은 인적자본을 가진 젊은이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 돼 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대기업·정규직 등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지자 젊은이들 가운데 결혼과 출산, 주택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 이른바 ‘3포 세대’라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또한, 일자리를 구하려는 많은 젊은이가 공무원 직종을 희망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은 높지 않더라도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공무원을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것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공무원이 생산자인 기업들이 더 원활한 경제활동을 하도록 뒷받침하는 사회간접자본(SOC)으로서 역할을 하는 직업이라고 본다면, 수많은 젊은이가 오랫동안 공무원시험 준비에만 힘을 쏟는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에 직접 투입되는 생산적 활력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그동안 애써 쌓아온 인적자본을 제대로 못 쓰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에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 말라고 권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들 모두가 단순히 안정된 일자리와 소득만을 고려해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무원으로서 공익을 위해 일해보고자 하는 젊은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래도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시험 성적을 받으면 합격할 수 있는 것이 공무원 시험이다.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일부 대기업의 노사 단체협약 내용 가운데 신규 채용 시 장기근속자와 정년퇴직자 자녀를 우선 채용하도록 하는 ‘고용세습’ 조항이 지적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젊은이에게 큰 좌절감을 주는 내용이다. 이뿐만 아니라 서울교통공사의 경우는 무기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공채직원 역차별 문제가 불거져 문제가 되고 있다.

이처럼 기업의 인재 채용에서 불공정한 행위가 지속된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밝을 수가 없다. 아무리 세계 최고 수준의 인적자원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한다면 물거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수한 인적자원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선 불공정한 노동시장의 폐습을 빨리 없애야 한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라는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