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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덕이 파저강을 정벌한 것은 대마도에 비해 그 공이 갑절이나 된다.” 1433년 5월 11일 파저강 토벌의 승전보를 접한 직후 세종이 한 말이다. 도대체 최윤덕은 어떻게 그런 놀라운 전공을 세울 수 있었을까?

그 승리 요인을 살펴보기 위해 나는 토벌 준비 기간의 실록, 즉 1432년 12월부터 1433년 4월 사이의 세종실록에 있는 왕과 신료들 사이의 대화를 분석해봤다. 그 결과 왕은 끊임없이 신료들에게 의견을 물었고, 신료들 역시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이야기하고, 그 대책을 논의했음을 확인했다. 5개월여 동안 세종 정부는 왕과 신료들 사이의 수직적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신료들 사이의 수평적 의사소통을 총 가동해 토벌에 대한 명나라의 승인 문제부터, 토벌의 시기와 방법(전략과 전술)까지 점검하고 대책을 세운 것이다.

흥미롭게도 세종의 이런 회의 방식은 영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흔히 제1차 대전에서 독일군은 ‘전투’에 승리하고도 ‘전쟁’에 실패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영국과 독일의 대응방식의 차이에 있었다.

윈스턴 처칠의 회고록 ‘폭풍의 한가운데’를 보면 독일은 파울 폰 힌덴부르크 참모총장 주재로 강경파 장군 및 참모들과 작전회의를 했다.

1917년 1월에 열린 플레스 회의에서 그들은 민간 정치인들을 침묵시키고 무경고 잠수함인 유보트를 전격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매달 60만t의 영국 배를 격침해 해상패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독일로 하여금 패전을 향해 줄달음치게 했다. 이에 대한 영국의 대응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독일군의 무차별 공격 선언으로 영국은 한때 큰 위기에 빠졌다. 항구를 드나드는 상선의 숫자는 일주일에 최소 2500척이 넘는데, 그들을 지켜줄 그 많은 군함을 당장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해상패권을 독일에 내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때 R G 헨더슨이란 하급 장교가 이의를 제기했다.

헨더슨 중령은 모두가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있는 2500척이란 숫자에 의문을 품고 살펴본 결과, 그 숫자는 모든 연안 무역선과 단거리 무역선을 합친 것으로 그 배들을 모두 호위할 필요는 없다는 점, 그리고 해군의 호송이 필요한 배는 매주 120에서 140척의 대형원양어선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을 모리스 행키라는 정치가가 받아들여 마침내 전시내각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처칠에 따르면, “이처럼 해군성이 주장한 2500이라는 허수가 무너지자 이를 기초로 해서 쌓아 올렸던 모든 논리적 쟁점이 하루아침에 설 땅을 잃었다”고 한다.

결국, 영국은 행키 등의 주장대로 ‘상선 호송체제’를 실행했고, 이로 인해 독일의 유보트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이와 관련해서 처칠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길고 격렬했던 논쟁의 한편에는 아마추어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유능하고 경험 많은 전문가인 해군성 장군들과 싸우고 토론했다. 결국 그 아마추어들의 상식에 기반한 추론이 옳았고, 전문가인 해군성이 틀렸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600여 년의 시간을 초월해 한반도와 유럽에서 벌어진 두 가지 사건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큰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우리는 먼저 전문가의 견해를 묻되, 보통 사람의 상식에 입각한 의견을 듣는 창구도 열어놓아야 한다. 수직적인 의견교환 못지않게 수평적인 의사전달 채널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전제하고 있는 조건들을 문제 삼을 수 있는 열린 회의 분위기야말로 최선의 결정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것을 세종과 영국의 사례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