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대북(對北) 정책에 대한 찬반과는 별개로, 북한 앞에서 굽실거리는 행태가 국민의 수인한도를 넘고 있다. 남북 당국은 지난달 14일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를 개소하면서 주 1회 ‘소장 정례회의’를 갖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천해성 통일부 차관은 지난 19일과 26일 방북했지만, 북측 소장은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다. 개성 연락사무소는 문재인 정부가 국회 비준 동의까지 요구하고 있는 ‘판문점선언’에 따라 설치된 것이다. 문 정부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우려, 사무실 개·보수에 투입된 100억 원 가까운 남북협력기금에 대한 논란까지 감수했었다. 그럼에도 북한이 제멋대로 하는 것은 남측을 농락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평양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한 우리 기업 총수들의 식사 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며 면박을 줬다는 사실이 2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공개됐다. 이에 대해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북측에서 남북관계 속도를 냈으면 하는 게 있다”며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북한 입장을 두둔하듯 말했다. 조 장관은 지난 16일 고위급회담 때도 북측 단장인 리선권이 “바로 잡을 문제가 있다. 연말까지 분투하길 바란다”고 하자 “말씀 주신대로 역지사지하겠다”고까지 했다. 이뿐 아니다. 조 장관은 10·4 공동선언 11주년 평양 행사에서 약속 시간에 늦자 리선권으로부터 “시계도 주인을 닮아서…”라는 질책을 당했다.

비핵화를 위한 제재 강화에 역점을 두는 미국에 대해 문 정부는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다”며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다.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 앞서 29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면담한 것도 정상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유럽 순방을 하면서 김정은 입장을 대변해 국제사회로부터 눈총을 받았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글로벌 기업의 총수들이 세계 최악의 실패한 국가의 일개 당국자에게 면박을 당해야 할 이유가 없다. 조 장관도 명색이 대한민국 정부의 장관이고 국무위원이다. 그런데도 리선권 앞에서 저자세를 보이는 것은 국민 모두를 욕보이는 일이다. 이런 참담한 행태를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