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미 “묻혔던 전쟁·분단 상처… 기록해야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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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추상미 감독

우연히 영상에서 본 北꽃제비
몇개월뒤 죽었단 소식에 눈물

폴란드 보내진 6·25 전쟁고아
극영화 만드는 과정을 다큐로
탈북배우도 현지서 마음 열어

‘작은 영화’ 개봉관 잡기 별따기
사회적 책임 없이 상업 논리뿐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당사자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어요.”연기를 접고 연출에 전념하고 있는 추상미(사진) 감독은 첫 장편 다큐멘터리로 ‘폴란드로 간 아이들’(31일 개봉)을 선택한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방송에서 북한 ‘꽃제비’ 영상을 봤는데 몇 개월 후 그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눈물이 났다”며 “그때부터 분단의 현실을 깊게 인식했고, 폴란드 언론인 욜란타 크리소바타가 쓴 소설 ‘천사의 날개’를 접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이 소설은 크리소바타가 폴란드 공동묘지에서 ‘김귀덕, 13년의 생을 살았고, 1955년 9월 20일 세상을 떠났다’라고 쓰인 묘비를 본 후 6·25전쟁 때 폴란드로 보내진 한국 전쟁고아 1만5000명의 실화를 찾아내 이를 바탕으로 2013년 썼다. 이 이야기는 폴란드 공영방송 TVP에서 ‘김귀덕’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방영됐다. 고아들은 북한에서 천리마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1959년 모두 북한으로 송환됐다.

추 감독은 이 소설을 번역한 내용을 보고, 1년 반 동안 논문 등 관련 자료를 찾아 자신의 첫 장편 극영화 ‘그루터기들’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욜란타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당시 전쟁고아들을 친부모처럼 돌봐준 300명의 폴란드 교사 중 10여 명이 생존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또 전쟁고아 중 절반이 남한에서 간 아이들이라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됐어요. 바로 시나리오를 썼죠. 영화 관계자들은 ‘너무 생소한 이야기고, 이 시대에 큰 관심을 못 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했지만 저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제작지원을 받게 됐고, 시나리오 완성과 로케이션 허가 등을 받기 위해 폴란드로 가서 다큐를 찍기로 결심했어요.”

2016년 추 감독의 폴란드행에 탈북민 출신 배우 이송이 동행했고, 두 사람은 극영화보다 절절한 장면을 다큐에서 보여준다.

“‘그루터기들’의 조·단역 배우들을 탈북민 출신으로 뽑으려고 오디션을 진행했는데 거기서 발탁된 이송과 함께 폴란드로 갔어요. 탈북민의 경험도 시나리오에 녹여 넣고 싶었고. 송이에게 연기지도도 하려 했어요.”

하지만 현지에서 송이의 감정이 폭발했고, 몇몇 폴란드 교사는 북한과의 관계를 이유로 인터뷰를 피했다.

“모진 일들을 겪으며 한국에 온 송이가 지닌 의심과 경계를 푸는 일이 가장 힘들었어요. 자기를 이용한다는 생각을 했더라고요. 그러다가 폴란드에서 전쟁고아를 돌본 선생님들을 만나며 마음의 빗장을 풀기 시작했어요. 남한에 와서 계속 무시당하다가 처음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를 피하는 선생님들이 많아서 일부는 폴란드 TV에서 방영된 다큐 장면을 활용했어요.”

2007년 결혼한 추 감독은 2009년 드라마 ‘시티홀’을 마지막으로 연기를 하지 않고 있다. 바로 임신을 했지만 유산됐고,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꿈을 이루기 위해 연출 공부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고 추송웅) 무대를 동경해 연기를 시작했지만 배우로서 소모적인 상품이 돼 간다는 회의감이 들었어요. 유산의 충격도 컸고요. 이겨내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2011년에 아들을 낳으며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아이에 대한 애착과 좋은 엄마가 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어요. 그러다가 북한 아이들의 실상을 접하고, ‘그루터기들’ 시나리오를 쓰며 우울증이 나았어요.”

이 다큐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전석 매진되는 등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개봉 상황은 녹록지 않다. 30일 현재 개봉일에 150개 상영관이 잡혔지만 관별 회차가 1∼3회밖에 열리지 않았다.

“작은 영화는 극장 잡기가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겪으니 정말 착잡하네요. 개인적인 안타까움은 접어놓더라도 우리 영화산업이 이렇게 사회적 책임 없이 상업적 논리로만 흘러간다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드네요. 그래도 저는 힘을 내서 계속 영화를 만들 거예요. 배우 할 때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힘들었지만 연기를 통해 상처를 치유했거든요. 지금 우리 사회가 분열되고, 서로 공감 못 하는 상처의 근원을 과거 근현대사에서 찾아 치유하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요.”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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