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莫道秋霜不滋物 菊花還借後時黃(막도추상부자물 국화환차후시황)

가을 서리가 만물을 키워주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 국화는 서리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노랗게 핀다.

만당오대(晩唐五代)의 시인 황도(黃滔)가 쓴 ‘기동년이시랑귀정(寄同年李侍郞龜正)’의 끝 구절이다. 역대로 국화를 노래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대부분 은둔, 절개, 고아함, 담백함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는 역경을 견디고 꽃을 활짝 피우는 강인함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작품은 장안을 떠나는 친구를 격려하는 시로, 앞에서 먼저 곤륜의 옥돌은 의심을 받아야 빼어난 옥이 되고 대붕은 잠시 쉬고 난 뒤에 크게 날개를 펼치며 나아간다고 말한다. 이어 모진 가을 서리를 맞고 난 뒤에야 비로소 노란 꽃을 피우는 국화처럼 벗도 역경을 잘 견디기를 기원하며 마무리 짓는다.

사실 시인 자신이 긴 세월 역경을 잘 견뎌 만년에 꽃을 피운 사람이다. 빈한한 집안 출신인 그는 20대 초반부터 과거 시험을 치기 시작했으나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어 오랜 세월 낙방을 거듭하다 5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사에 급제했다. 기쁨도 잠시, 청탁으로 급제한 자가 있어 모두 재시험을 치러야 하는 불운도 겪지만 결국 급제해 이름을 크게 떨쳤다. 혼란의 시대라 그리 높은 관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얼마 뒤 고향으로 돌아가 지역 문단의 영수가 되었고, 그의 후손들이 뒤를 이어 줄줄이 과거에 급제함에 따라 결국 지역 최고의 명문 가문의 중흥 시조가 됐다.

상강도 지난 이 차가운 계절에 샛노란 꽃을 활짝 피우는 국화를 보고 있으면 고아한 절개와 담백함도 좋지만, 그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서리를 맞으면서 더욱 강해지는 저 국화의 기상에서 힘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상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