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군사분야 합의는 지난달 19일 합의서가 채택 직후부터 내용을 둘러싼 우려가 제기됐는데, 급기야 ‘비준’이라는 절차적 문제를 놓고도 위헌(違憲) 시비에 휩싸이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직접 비준하는 형식을 거쳤다. 청와대 측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 따른 합당한 절차라고 밝혔다. 이 법 제 21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남북 합의서를 체결·비준하며,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합의서 또는 입법 사항에 대한 동의권을 갖는다. 군사합의는 재정 부담과 무관하므로 국회 동의 없이 대통령이 비준하면 된다는 것이 청와대 설명이다.

그러나 그런 입장은 군사합의를 지나치게 좁고 편의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위헌 소지가 크다. 군사합의는 단계적 군축 실현, 군사 훈련과 무력 증강에 대한 상호 협의 등 안보에 영향을 미칠 중대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핵무기 방어 체제 구축은 물론 미국의 핵우산 제공 등도 지장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발전법보다 헌법 제60조 1항 ‘국회는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에 관한 체결·비준 동의권을 가진다’를 적용하는 게 타당하다. 순수하게 절차적 측면만 봐도 마찬가지다. 군사합의 공식 명칭은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이다. 청와대는 판문점선언에 대해서는 비준 동의가 필요하다며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판문점선언이 국회 비준 동의 요건이 되는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판문점선언의 국회 동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부속 합의를 대통령이 일방 비준하는 것은 자가당착임은 물론, 국회의 헌법적 권능을 묵살하는 일이다.

남북관계발전법은 입법 취지(제2조)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투명과 신뢰 원칙에 따라 추진돼야 하며, 정치적·파당적 목적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고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야당의 가처분 소송 및 권한쟁의심판 청구까지 부르게 생겼다. 군사합의는 비준 절차도 끝났다는 문본(文本)을 교환해야 발효되는 만큼 아직 시정할 기회가 있다. 하루빨리 문제가 된 내용과 형식을 바로잡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