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갓 도정을 마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햅쌀. 이번 가을 수확한 햅쌀이 묵은쌀보다 밥맛이 좋은 이유는 수분이 많고 점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아밀로스 함량따라 찰기 구별
완전립 96% 이상땐 ‘완전미’
단백질 함량 낮을수록 ‘수’
도정 일자 최근일수록 좋아

밥할땐 가볍게 3번정도 씻고
쌀 : 물 비율은 1 : 1.2가 적당

고온에 특히 약해 변질 쉬워
여름엔 김치냉장고 보관 최적

매년 가을이면 갓 수확한 햅쌀이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햅쌀의 품질은 이듬해 3~4월까지 잘 유지된다. 하지만 온도가 올라가는 5월부터는 미질 변화가 심해진다. 곡식저장고에 저온저장해 뒀다가 그때그때 도정하기 때문에 1년 내내 좋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해도 소비자 관점에서 좀 더 엄격한 품질 기준을 적용해 본다면 음력설을 기점으로 햅쌀과 묵은쌀로 구분해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벼는 태양에너지를 포도당으로 바꿔 작은 낟알에 차곡차곡 저축한다. 포도당이 수만에서 수백만 개까지 결합한 전분 형태로 만드는데, 아밀로스와 아밀로펙틴으로 나뉜다. 아밀로스는 포도당이 나란히 이어 붙어 스프링처럼 코일 형태로 감겨 있는 것이고, 아밀로펙틴은 포도당이 수십 개 이어 갈 때마다 나무처럼 옆으로 따로 가지를 치며 빽빽하게 모여 있는 형태를 이룬다.

두 성분이 중요한 이유는 쌀 특성과 품질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멥쌀과 찹쌀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우리가 먹는 멥쌀은 대략 20% 이하의 아밀로스와 80%가 약간 넘는 아밀로펙틴으로 돼 있다. 찹쌀은 아밀로스가 0~7% 정도이고 대부분 아밀로펙틴으로 돼 있다. 그래서 찹쌀은 끈적임이 강하고 멥쌀은 약하다.

아밀로스 형태는 끊어지기 쉬워 그 비율이 높을수록 밥을 하면 푸석푸석한 느낌을 준다. 안남미라 불리는 낟알이 가늘고 긴 인디카종 쌀은 아밀로스 함량이 높아서 낟알이 서로 달라붙지 않고 푸슬푸슬하다.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중국 일부 지역에서 먹는 자포니카종은 낟알이 짧고 통통한 모양이며 인디카종에 비해 아밀로스 함량이 낮아 찰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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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이제는 쌀 품종이 맛 중심으로 바뀌었다. 품종마다 아밀로스 함량도 다양해 수치가 낮으면 밥맛이 좋아진다. 아밀로스 함량이 찹쌀과 멥쌀의 중간 정도인 ‘중간찰’ 품종도 있다. 중간찰은 찰기의 정도에서 나온 말로, ‘반찹쌀’이라고도 한다.

시장에 가면 쌀의 종류가 많아 어느 것을 고를지 망설여진다. 브랜드도 많고 품종과 산지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갓 도정한 쌀의 품질이 가장 우수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으므로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포장에 적혀 있는 도정 일자다.

품종과 산지 확인도 필요하다. 품종에 따라 아밀로스와 단백질 함량이 다르고 특성 차이가 나므로 이 중 선호하는 품종을 고른다. 산지에 따른 차이도 있다. 벼가 익을 때 일교차나 일조시간은 미질에 영향을 미친다.

쌀 포장에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정보는 ‘완전립 비율’에 따른 등급이다. 특, 상, 보통 또는 등외로 구분한다. 완전립 비율이란 낟알 평균 길이의 4분의 3 이상인 것 가운데 속이 분필처럼 하얀 것, 변색된 것, 병충해를 입은 것 등을 제외한 비율을 말한다. 완전립이 96% 이상이면 ‘특’ 표시와 함께 ‘완전미’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 단백질 함량은 의무 표시사항은 아닌데 학교에서 성적을 기록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단백질 함량이 낮을수록 높은 점수인 ‘수’로 기록한다.

새누리, 신동진, 삼광, 추청, 일품, 새일미, 운광, 동진찰, 오대, 일미, 호품 품종의 재배면적이 전체의 80%가량을 차지하는데 맛이 우수한 품종들이다. 쌀 포장에서 일본 이름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고시히카리와 그 계통의 히토메보레 품종이다. 일본에서 평가가 좋은 품종을 들여온 것이다. 영어 이름 밀키퀸은 일본에서 개발한 중간찰 품종이다. 같은 중간찰 품종인 골든퀸3호는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것인데, 팝콘 향이 나는 특징이 있다.

향기가 나는 쌀, 흑색·적색·녹색으로 색깔이 있는 쌀, 식이섬유 함량이 높은 쌀, 밀가루처럼 가루로 내기 좋은 쌀, 술을 만들기 좋은 쌀, 그 밖에도 다양한 기능성 쌀이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렇게 좋은 쌀을 사서 밥을 맛있게 짓는 법이 궁금하다. 35년 조리 경력의 최인(전 일식조리사협회장) 씨는 정성을 들인 밥 짓기는 요리의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쌀을 씻을 때는 낟알에 상처가 나지 않게 같은 방향으로 가볍게 저어 주면서 세 번 정도 씻는다. 밥물의 양은 쌀의 수분 함량에 따라 다른데 찰기가 많아도 물의 양을 조금 줄여야 한다. 쌀과 물의 비율은 1: 1.2~1.3 정도가 기본이다. 정수기 물을 쓰는 것이 좋다. 요즘은 압력밥솥에 밥을 짓는 것이 보편화됐지만, 불 조절의 기본은 밥이 끓어오를 때까지는 강한 불, 그다음은 중불, 뜸을 들일 때는 약한 불로 조절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쌀은 매일 먹는 것이라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많다. 곰팡이가 생겼다면 먹지 말아야 한다. 쌀에 핀 곰팡이가 만들어 내는 독소는 인체에 위험하기 때문이다. 쌀을 오래 저장하면 효소 작용으로 성분이 변하는데, 지질이 산패해 묵은쌀 특유의 냄새가 난다. 쌀을 쪄서 건조한 제품은 효소 작용이 억제돼 변질 없이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

온도가 높아지면 쌀의 품질도 떨어진다. 여름철 고온에 의해 변질은 가속화한다. 쌀의 품질을 잘 유지하려면 김치냉장고에 넣어 두는 것이 가장 좋고, 산소 접촉을 줄일 수 있는 포장이라면 더 좋다. 저온 보관은 쌀의 품질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호흡을 억제하고 벌레가 발생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쌀을 더운 곳에 보관하면 쌀바구미가 생길 수 있다. 성충이 쌀에 접근해 구멍을 내고 안에 알을 낳는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쌀을 파먹으며 자라 성충이 돼서 밖으로 나온다. 쌀바구미가 생겼다면 신문지 위에 쌀을 펼쳐 놓고 햇볕에 말려 쌀바구미가 빠져나오게 해 제거할 수 있다. 쌀바구미 자체가 독성물질을 내놓지는 않기 때문에 쌀을 다 버릴 필요는 없다.

쌀은 이유식으로도 좋은 재료다. 쌀을 불려서 다양한 죽을 만들 수 있다. 묵은쌀은 식초나 올리브유 한 방울로 새로운 변신을 할 수 있다. 쌀뜨물을 넣어 된장찌개나 도라지 무침을 하면 본래의 것보다 더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쌀을 이용한 역사가 오래된 만큼 가공 방법도 많은데 그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떡, 국수, 과자, 분말, 식용유, 조청, 음료, 주류, 조미식품, 차, 빵, 무균포장밥, 컵밥 등 무궁무진하다. 설날의 가래떡, 봄의 쑥떡처럼 오랜 전통을 가진 음식에서부터 젊은 층이 좋아하는 밥버거, 밥샌드위치, 밥전, 밥피자, 밥도그까지 그 변신은 끝이 없다. 떡 뻥튀기는 아기들의 나들이에 필수품이 됐다. 누룽지는 살짝 튀겨 설탕을 조금만 뿌려도 맛있는 과자가 된다. 요즘은 쌀로 마카롱을 만들기도 한다.

쌀은 부산물도 모두 이용했다. 버리는 것 하나 없이 아낌없이 주었다. 겉껍데기인 왕겨뿐만 아니라 볏짚과 도정 부산물도 모두 이용했다. 볏짚은 새끼를 꼬아 짚신을 삼았고 지붕 재료로도 썼다. 청국장을 만들 때도, 메주를 엮을 때도 이용했다. 남은 볏짚이나 왕겨는 퇴비로 활용했다. 최근에는 의약품과 기능성 소재로 활용되며 몸값을 올리고 있다.

신구대학교 식품영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