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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 정치부 부장

육·해·공군 작전사령관과 합참의장, 국방부 장관 등을 지낸 예비역 장성들과 남북협상 및 군사 전문가들에게 지난 9월 채택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 열 명 중 팔구 명은 합의서 내용을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역 지휘관 중 상당수가 ‘많이 놀랐다’는 반응이었다. ‘북한이 과거 군사협상에서 주장한 내용을 상당 부분 관철했다’ ‘우리 군을 무장해제하는 수준의 양보’ ‘돈(경제협력)을 줄 수 없으니 신체포기 각서를 준 셈’ 등 부정적 평가가 주를 이뤘다. ‘사실상의 종전선언’ ‘무력충돌 방지’라는 정부·여당 등 정치권의 자화자찬식 평가와는 결이 너무 달랐다.

심지어 군 작전에 정통한 예비역 장성 중에는 ‘항복문서’ ‘군사적으로 전쟁에 패배한 국가나 서명할 수 있는 수준의 합의문’이라며 정부에 공개토론회를 제안하는 등 격한 반응도 나왔다. 수십 년간 군사작전 실무와 남북협상을 경험한 장성 출신들로선 군사적 실익을 한눈에 파악하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장사정포 후방배치’ 협상 등을 언급한 데다, 전방부대 핵심 전력인 김포의 해병대 2사단, 기계화부대인 7군단 일부 부대의 후방배치 가능성 등이 거론돼 안보 구멍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국가전략연구원(KRINS)이 지난달 27일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과 이기식 전 해군작전사령관, 김정식 전 공군작전사령관, 류제승 전 정책실장, 문성묵 전 군비통제차장 등 전문가 토론을 거쳐 발표한 ‘정책토론회 보고서’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보고서는 평양선언에 담긴 북한의 의도에 대해 “문재인 정부를 최대한 활용해 비핵화하는 척하며 시간을 끌어 결국 핵보유국의 지위를 확보하려는 것”이라며 “종전선언 후 미국의 핵우산 및 확장억제 해제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북핵 폐기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의 함정이기도 하다.

보고서는 문 대통령이 지난 9월 말 뉴욕에서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기에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고,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어길 경우 제재를 다시 강화하면 그만이므로 미국으로선 손해 볼 것 없다”고 언급한 데 대해 “그야말로 순진무구하고 위험천만한 몽상”이라고 우려했다. KRINS를 비롯한 많은 군사 전문가가 한국의 국가안보 관련 정책결정자들이 미국·북한의 안보는 걱정하면서 정작 대한민국의 안보는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북한 핵과 단·중거리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핵 인질’ 신세가 된다. “지금까지 ‘당사자’인 한국에 대한 위협이 실질적으로 감소됐는지 냉정하게 평가하고, 북한과의 초보적 신뢰 구축 조치도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설사 비핵화를 이루더라도 북한이 대남 적화의도를 포기했다는 명확한 검증이 없는 한, 더 이상의 불리한 합의는 절대 안 된다”는 지적을 한 귀로 흘려선 안 된다. 비핵화 역시 언제든 표변하는 북한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표가 돼 안보를 양보해선 안 된다. 남북 경제협력 분야 과속은 국민 경제 손실로 이어지겠지만, 군비통제 부문 과속은 국가의 존폐를 좌우할, 돌이킬 수 없는 자해 행위가 될 수 있다. 과속은 절대 금물이다.

cs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