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빈곤퇴치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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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조사팀장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었다. 지난해 수확한 곡식은 다 떨어졌는데, 햇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굶주렸던 4∼5월을 칭했다. 일제강점기는 말할 것도 없고 6·25전쟁을 거치면서 1960년대까지 농촌의 빈곤상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이었다. 당시 한국은 세계 국가들로부터 구호를 받는 나라였다. 그러나 이제는 빈곤한 나라에 원조를 하는 국가의 반열에 섰다.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위대한 탈출’의 저자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한국은 빈곤으로부터 ‘위대한 탈출’에 성공한 대표적인 국가”라고 했다. 우리에겐 옛날이야기가 됐지만, 지구촌 곳곳에서는 매년 300만 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숨지고 있다. 2015년 기준 절대 빈곤층은 7억3600만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10%를 차지한다.

17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다. 유래는 1987년 프랑스 파리 트로카데로 ‘인권과 자유의 광장’에서 조제프 레신스키 신부 주도로 열린 ‘절대빈곤퇴치운동 기념비’ 개막 행사다. 기념비에는 ‘가난이 있는 곳에 인권 침해가 있다.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적혀 있다. ‘빈곤 탈출만큼 중요한 인권 신장은 없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유엔은 1992년부터 매년 10월 17일을 ‘세계 빈곤퇴치의 날’로 지정했다. 유엔은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모든 빈곤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저서 ‘빈곤의 종말’에서 아프리카 등을 발로 뛰어다니며 빈곤의 원인을 파헤치고,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빈곤은 물리적 환경에 기인한다”면서 “아프리카의 경우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Disease), 농사를 망치는 가뭄(Drought), 교통망이 열악한 거리(Distance)로 인한 ‘환경적 3D’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46만 원에 불과한 최빈국 북한은 ‘체제적 3D’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공산주의라는 질병, 열심히 일해도 소용없는 의욕의 가뭄, 국제적 고립에서 오는 거리감이다.

완전한 비핵화 없이 꼼수로 제재를 면해 빈곤을 벗어나려는 전략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런데도 어느 여당 국회의원은 “북한은 가장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가족주의적 나라”라면서 “여명 거리 등을 가보면 홍콩·싱가포르와 구분이 안 될 지경”이라고 했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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