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홍차옥(왼쪽) 강사가 지난 5일 서울 관악구 관악로 서울대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서울대 탁구 교양 수업에서 자세를 교정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대학서 학생지도하는 ‘왕년의 탁구스타’ 홍차옥

현역시절 ‘독종·철녀’로 불려
현정화 감독과 ‘환상 파트너’

은퇴뒤 생활체육지도자의 길
박사 학위받고 전임강사 맡아
수강신청 쇄도 ‘인기 선생님’

단일팀 구성땐 누군가 피해
남북이 함께 선발전 치러야

“벌써 지쳤습니까. 일어나세요!”

지난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관악로 서울대 종합체육관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인공은 왕년의 탁구 스타 홍차옥(49). 서울대 전임강사로 탁구 교양과 전공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홍 강사’는 서울대 공부벌레 30여 명을 지도했다. 홍 강사는 1명씩 개인 지도할 때마다 타이머를 꺼내 5분을 맞췄고, 학생들은 홍 강사가 친 공을 포핸드, 백핸드로 받아내며 ‘지옥의 5분’을 버텼다. 그리고 5분이 지나자마자 주저앉거나 쓰러지기 일쑤. 그만큼 홍 강사의 지도, 훈련은 강도가 높았다. 하지만 홍 강사는 150여 분을 쉬지 않는 강행군을 펼쳤고, 1990년대 세계를 호령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홍 강사가 서울대 강단에 선 지 올해로 4년째다. 홍 강사는 지난 2013년 경기대에서 체육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선배(김순옥)의 추천으로 이듬해부터 서울대로 출근했다. 홍 강사의 탁구 강의는 서울대 학생들 사이에서 이미 입소문이 퍼졌다. 홍 강사는 직전 학기 학생들의 교수평가에서 5점 만점에 4.92점을 받았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학기가 시작될 때면 홍 강사의 강의 수강신청 ‘전쟁’이 벌어지곤 한다. 교양 과목으로 탁구를 선택했다가 중급 과정을 밟고자 문의하는 학생들도 여럿 있다. 홍 강사는 “개인적으로도 ‘투지’ 넘치는 수업을 진행해온 것 같아 자부심을 느낀다”며 “한국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서울대 제자가 이미 수백 명”이라고 자랑했다.

홍 강사의 투지는 현역시절부터 남달랐다. 태릉선수촌에서 ‘독종’ ‘철녀’로 불렸다. 탁구는 물론 다른 종목 국가대표들도 홍 강사 앞에선 고개를 숙였다. 승부욕이 무척 강해 지고는 못 살았다. 홍 강사는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는 국가대표 전원이 불암산 정상까지 ‘불암산 크로스컨트리’를 펼칠 때마다 1등을 놓치지 않았다”면서 “항상 1등을 하는 홍차옥 때문에 애꿎게 핸드볼 여자대표팀 선수들이 ‘단체 기합’을 받곤 했다”고 말했다. 홍 강사는 서울대 강의 역시 투지 있게 진행하고 있으며, 학기를 마치면 학생들의 탁구 실력, 체력은 부쩍 향상된다. 홍 강사가 인기를 누리는 비결. 홍 강사는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의 열의가 높아 수업은 늘 긴장감이 흐르고, 항상 ‘수업을 즐겨라’라고 조언한다”면서 “서울대 학생들이기에 학점 스트레스를 받는 걸 원치 않지만, 상대평가 탓에 모두에게 높은 학점을 주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홍 강사는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도록 체력을 길러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면서 “학생들이 수업 이후에도 탁구에 대한 애정을 지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홍 강사는 1994년 은퇴한 뒤 엘리트체육이 아닌 생활체육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서 동호인들을 대상으로 탁구를 지도했기에 노하우가 풍부하다. 홍 강사는 ‘국가대표 플랫폼’이라는 법인을 설립하고, 스포츠 콘텐츠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홍차옥은 현역 현정화(49) 한국마사회 감독과 ‘단짝’이었다.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여자복식 파트너로 호흡을 맞춘 홍차옥과 현정화는 1990 베이징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1991 지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으로 중국의 9연패를 저지했다. 당시 홍차옥과 현정화, 그리고 북한의 리분희(50)와 유순복(48)이 사상 첫 남북단일팀을 꾸렸다. 지바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남북은 46일간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홍차옥은 특히 유순복과 마음이 잘 맞았다. 조용하고 유순한 성격인 둘은 훈련이 끝나면 함께 쇼핑을 즐길 만큼 가까웠다. 2012년 개봉된 영화 ‘코리아’는 리분희에게 포인트를 맞췄다. 하지만 홍 강사는 당시 우승의 1등 공신으로 유순복을 꼽았다. 홍 강사는 “말수가 적고 순하기 그지없던 순복이가 결승에서 당시 최강자인 덩야핑과 가오준을 연달아 꺾는 걸 보고 소름이 돋았다”며 “지바 세계선수권은 ‘유순복의, 유순복에 의한, 유순복을 위한’ 대회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고 설명했다.

단일팀은 지바 세계선수권 여자단체 결승전에서 중국과 맞붙었다. 결승은 ‘4단식-1복식’ 방식으로 치러졌다. 유순복-현정화-현정화·리분희-현정화-유순복 순으로 출전했고, 홍차옥은 유일하게 벤치를 지켰다. 베이징아시안게임에서 우승했기에 결승 복식은 홍차옥-현정화 조가 1순위였다. 그러나 남북 1명씩 출전한다는 원칙에 따라 현정화와 리분희가 짝을 이뤘다. 홍 강사는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단일팀을 꾸리면 누군가는 피해자가 된다”며 “남북 동수 선발 원칙 때문에 수십 년 동안 대표선수가 되기 위해 훈련했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홍 강사는 “최근 단일팀 붐이 다시 일고 있는데, 이제는 남북이 동수로 출전해야 한다는 다소 정치적인 원칙을 융통성 있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남북을 가리지 않고 선발전을 치러 최강의 실력을 갖춘 단일팀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성훈 기자 powerkimsh@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