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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前 외교부 차관

미국과 북한 간 비핵화 협상이 중대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오는 7일 북한을 방문한다. 북한은 9·19 남북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의 상응 조치 시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를 공언했으므로 미국 측 반응을 기다릴 것이다. 미국은 영변 핵시설 폐기 이상의 것을 요구할 것이다.

워싱턴의 대다수 전문가는 영변 핵시설 폐기를 유도하기 위해 미국이 남·북한과 종전(終戰)선언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머리에도 종전선언은 6·25전쟁을 끝내는 선언이지 법적인 성격의 평화협정과 구별되는 ‘단순한 정치선언’으로 각인돼 있지 않다. 따라서 북한이 가진 핵 능력의 일부분인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하기 위해 유엔사령부, 한·미 동맹 등에 영향을 미치는 종전선언에 동의하는 것은 일종의 ‘부등가(不等價) 교환’이다.

미·북 협상의 종착역은 비핵화와 미·북 관계 정상화다. 따라서 비핵화의 초기 단계인 영변 핵시설 폐기와 미·북 관계 정상화의 초기 단계인 연락사무소 설치에 합의하는 것이 적절하다.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반드시 종전선언을 받아내야겠다면 북한이 가진 핵 능력의 실체를 국제사회에 공개해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하면 이에 대한 검증은 필수 사항이다. 북한이 이렇게 ‘검증 가능한 신고(verifiable declaration)’를 하면 비핵화 의지를 보여준 것이므로, 그에 상응한 조치로 미국은 종전선언을 할 수 있고 후속 비핵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경제제재 완화도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말과 행동을 종합해 볼 때 북한의 전략은 ‘부분적’ 핵 폐기와 미·북 관계 정상화를 맞바꾸는 것이다.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이 최근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나 안전에 대한 확신 없이 일방적으로 핵무장을 해제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한 것은 북한이 조건으로 제시한 군사적 위협 제거를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북한도 완전한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배수진을 치고 미국을 긴장시킨 다음 북한은 미국 측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폐기하고 핵확산을 않을 테니 종전선언 및 경제제재 해제를 하라고 제안할 수 있다. 검증 가능한 신고는 철저히 거부하고 핵 능력 중에서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부분, 즉 본토 타격 미사일과 핵탄두 일부 및 핵확산 위협만 제거한 채 종전선언과 경제제재 해제를 맞바꾸자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의할 경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물 건너가게 된다. 미국이 대북 군사공격을 암시하는 ‘화염과 분노’로 되돌아가지 않는 이상 종전선언을 취소할 수 없고, 중국과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는 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다시 대북 제재를 가할 수 없다.

종전선언이 되면 동맹국이 100% 비용 부담을 하지 않는 한 미군 주둔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대폭 감축에 이어 철수까지 검토할 것이다. 이미 실전 배치돼 있는 800기 이상의 북한 중단거리 미사일이 그대로 있고, 영변 지역 이외의 핵탄두는 폐기 대상에도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며칠 전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 북한의 핵탄두가 어느 정도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20∼60개 정도라고 담담히 답변했다. 이를 모조리 없애겠다는 결기보다 우리가 남북관계 개선과 미·북 중재에만 몰두할 경우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등극한 후 대한민국을 깔고 앉으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