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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하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주임교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신형 훈련기 ‘T-50A’가 미국 공군의 차기 고등훈련기(APT) 교체사업 입찰에서 경쟁 기종 ‘BTX-1’에 밀려 탈락했다. APT 사업은 미 공군의 T38 고등훈련기 350여 대를 약 10조2000억 원 투자해 교체하는 사업이다. 연관 산업 파급효과까지 고려하면 50조 원이 넘는 대형 무기획득사업이다. 우리 1년 국방예산을 뛰어넘는다.

언론에서는 수주 실패 원인을, ‘최저가 입찰’ 방식을 적용한 경쟁에서 KAI가 경쟁사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데서 찾고 있다. 물론 가격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국가 간 무기 거래에서는 안보 전략적·기술적 고려도 중요한 요소다. 패권국 미국의 시각에서 보잉-스웨덴 사브 컨소시엄의 BTX-1 훈련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보자.

우선, 안보 전략적 관점이다. 유럽전략 관점에서 미국이 스웨덴을 선택한 것은 탁월하다. 현재 스웨덴은 경제 역량이 건실한 국가들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고, 최상의 군사력, 그리고 기반이 탄탄한 금융 체제를 갖고 있다. 이런 스웨덴을 통해 미군의 주둔을 간절히 원하는 폴란드의 힘을 대신 키우고, 잘 관리시킨다면 중·북부 유럽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중국 봉쇄에 초점을 둔 인도태평양전략의 관점에서 볼 때, 친중 노선을 걷는 한국이 뭐가 좋아서 T-50A를 구매하겠는가? 미국이 T-50A를 선택할 경우, KAI는 미군 사용 훈련기라는 후광을 등에 업고, 수출 증가→수익 창출→KFX 개발 가속화→항공산업 발전이라는 환상적인 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 미국으로서 이게 좋겠는가? KFX 때문에 소형 전술기 시장의 일부를 잃을 수도 있는데. F-16 구매국이 KFX를 사기 위해 노선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미국이 인도태평양전략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인도에 F-18, F-16 생산라인을 설치하고, 또 엔진·레이더 기술도 이전키로 한 것은, 줄을 잘 선 인도에 대한 보상이며, 한국의 KFX 사업에 대한 견제 포석이다.

다음은, 기술적(경제적) 관점이다. 보잉·사브 컨소시엄이 제시한 3D 프린팅과 복합소재, 특히 3D 프린팅은 세계적으론 아직 초보적인 단계다. 하지만 미국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보호해야 하는 분야(의료·항공·방위산업 등)에 가장 집중적으로 응용시키고 있는 기술 중 하나다. 셰일 덕분에 저렴한 전기료로 3D 프린팅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3D 프린팅은 제조와 소비가 같은 장소에서 이뤄지도록 하므로 공급 사슬이 훨씬 간소화되고 운송비도 절약된다.

특히, 꼭 필요한 것만 찍어낼 수 있으므로 재료가 낭비되지 않고, 제품도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 이게 미국 내 부품 생산 비율을 높이고, 고용 창출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반면, KAI·록히드마틴의 T-50A는 성능은 뛰어나지만 총수명주기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그런데 훈련기 시장에서는 성능보다 총수명주기비용이 적게 들면서 조종사를 키워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 보잉·사브 컨소시엄은 이 점을 정확히 공략해 사업 수주에 성공한 것이다.

요약하면, KAI의 이번 수주 실패는 KAI가 경쟁사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한 것도 한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적절히 부응하지 못하고 다른 노선을 걷고 있는 한국 정부, 그리고 기술의 혁신적 변화 추세 및 비용 절감 방안 제시에 다소 소홀했던 KAI의 대응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