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밤은 그저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꿈꾸는 자의 피난처’이다. 영국 화가 윌리엄 포웰 프리스의 1872년 작품 ‘잠(Sleep)’. 자료사진

- 밤을 가로 질러 /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전대호 옮김 / 해나무

밤에 관한 낭만·철학적 산문
과학·역사·문학적 사유 고찰

人生 속 선·악,기쁨·슬픔 다뤄
“어둠 통해 빛의 의미 알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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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어둠에 대한 매우 낭만적이고, 과학적이며 철학적인 산문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1899년, 베를린에서 쓴 시 ‘나의 기원인 너, 어둠이여’라는 시를 인용하며 시작하는 책은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낮의 반대인 어둠은 모든 것의 출처이며, 따라서 모든 것을 품을뿐더러 모든 것을 남몰래 간직한다.”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과학사가인 저자는 특별히 어둠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전하기보다는 어둠과 손을 잡고 있는 밤, 잠, 꿈, 욕망 그리고 어둠을 과학과 역사, 인문적 틀로 살펴보고 의미를 탐색하며 하나의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그 진실이란, 이 세상과 우리의 삶은 그저 낮과 밝음, 밝음과 궤를 함께하는 이성, 기쁨과 환희만으로 이뤄지지 않고, 밤과 어둠, 이성으로 나아가게 하는 어둠, 슬픔과 절망 그리고 꿈틀거리는 욕망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낮이 지나면 밤이 오고, 밤이 지나면 다시 낮이 오듯이 우리 삶 또한 기쁨과 슬픔, 이성과 욕망, 때로는 선함과 악함을 모두 갖고 있다.

책은 밤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밤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한다. ‘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과학적으로 답한 뒤, 우주의 먼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철학자의 정의와 많은 작가가 바라본 밤의 모습을 살핀 뒤, 현대 도시인이라면 누구라도 동의하는 밤의 실종까지 다룬다. 과학, 문학, 역사, 철학에 걸친 지식을 자유롭게 풀어내며 사유를 이어간다. ‘밤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사실 오늘날에도 풀기 쉽지 않은 문제다. 칸트로 하여금 ‘숭고한 감정에 압도되었다’고 토로하게 한 밤하늘의 어둠은 과연 무엇 때문에 생긴 현상인가. 단순하게 보면, 밤은 지구의 그림자 때문에 생긴다. 하지만 밤하늘이 어두운 것은 우주의 기원과 우주의 비밀로 이어진다. 바로 이 자체가 우리에게 우주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 밤에 대한 두려움, 욕망이 뒤엉킨 사랑, 도시와 궁전에서 벌어진 밤 문화 이야기가 전해지고, 인공조명이 없던 시대에 밤의 풍경은 어떠했는지 들려준다. 밤과 함께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잠과 꿈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쏟아내고, 인간에게 어둠으로 인식되는 인간 속의 악의 문제도 집요하게 파고든다. 악의 싹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것이라며 특히 절대적 악뿐 아니라 친구에게는 한없이 우호적이면서 적에게는 무자비하게 구는 한 인간의 도덕적 이중성 문제를 제기한다. 도덕적 이중성이야말로, 세상의 낮과 밤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프랑스의 화가 아리 셰퍼의 1848년 작품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자료사진

결국 책은 하나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창조적인 밤, 삶의 기쁨과 풍요로움은 밤의 어둠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는 것이다. “별빛이든 등불이든, 인간에게 모든 빛은 오직 배경의 어둠과 함께할 때만 눈에 띈다. 또한 모든 통찰은 어둠 속에서 내딛는 첫걸음을 요구한다. 세상이 고요해야 비로소 소리가 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찰은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생각들이 나의 내면의 밤 속에 있지 않다면 달리 어디에 있을 것이며, 그 생각들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단어들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저자는 “어둠, 곧 밤이 없고 밝음과 어둠의 상호작용이 없다면 생명은 존재할 수 없음을 늘 되새기라”고 한다. “우리는 모두 새로운 낮을 맞이하기 위해 항상 다시 밤을 통과해야 하고, 새로운 낮도 다시 다음 밤으로 이어질 따름”이라는 삶과 세상의 원리를 잊지 말라고 한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낮만큼이나 밤이, 빛만큼이나 어둠이 필요하며, 피할 수 없다는 책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삶은 밤을 통해 가치를 얻는다.” 352쪽, 1만6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