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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

정치권은 설과 추석을 정국 주도권 확보의 계기로 여긴다.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과거만큼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지만, 각지에 흩어져 살던 가족이 모여 각 지역의 민심을 직접적으로 교환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추석 민심 잡기는 자유한국당의 완패로 끝난 것 같다. 실업률과 최저임금 인상 등 경제 문제로 조금씩 주도권을 회복하는 것 같다가,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남북 정상회담 때문에 어젠다 선점의 기회가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여론조사에서 확인된다. 지난 24일 보도된 KBS의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 ±3.1%p)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단숨에 70%를 뛰어넘었다. 그뿐만 아니라, 김정은의 답방에 대해 환영 의사를 밝힌 응답자는 87.4%로 압도적이었고,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한 응답자도 55%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더 흥미로운 것은, 비핵화가 안 되더라도 김정은의 답방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도 적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비핵화와 남북관계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김정은이 한국에 오면 잘 구슬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재미있는 결과다.

그리고 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이라고 평가한 응답자는 83%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정도로 성공적이었다면 다수의 언론이 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할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이 열광하는 것만큼의 성공을 거둔 정상회담이었다면, 굳이 미국을 설득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먼저 ‘버선발’로 뛰어나와야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점 또한 흥미롭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도 한국당은 정의당에 제1야당의 지위를 물려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한국당이 알아야 할 게 있다. 국민의 문제의식을 일깨워 본인들이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게 정치가 아니라, 옳았든 틀렸든 일단 여론을 받아들이다가 국민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할 때 비로소 여론에 힘을 실어주고 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아무리 옳은 말을 한다 하더라도 국민의 생각이 미치지 못한 시기에 ‘지나친 용기’를 과시하는 것은 현명한 정치 행위가 아니란 말이다.

예를 들어, 현 정권이 소득주도 성장론을 들고나오고 국민이 이에 호응했을 때, 한국당이 아무리 뭐라 해도 국민 여론은 한국당을 희화화했지, 한국당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야 국민 스스로가 경제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어 한국당도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당시는 그래 봐야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국민의 외면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음을 되돌려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당은 지금 정상회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민생 문제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즉,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국회를 하루바삐 정상화하는 데 앞장서서, 민생 문제에 관한 한 정파를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제1야당으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는 길이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서 남북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봐야 정권의 논리에 오히려 휘말리는 결과만 초래될 뿐임을 알아야 한다. 기다릴 줄도 아는 것이 정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