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공동으로 유엔에 제출했다는 ‘4·27 판문점 선언’의 종전선언 합의 부분에 대한 영역(英譯)이 새로운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당초 판문점 선언 자체가 모호하게 처리된 것이 원초적 문제다. 제3조 3항은 ‘남과 북은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3자 또는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이다. ‘올해에’가 수식하는 부분이 문제인데, 그 뒤에 쉼표가 없는 것으로 봐서 그 뒤 전체 문장을 수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판문점 선언 직후 통일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종전선언 등은 남북만이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어서 3자 또는4자 회담을 추진해나가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청와대의 번역(during this year …agreed to actively pursue 3 or 4 meeting)이 정확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올해 종전선언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연내 종전선언을 하기로 합의(agreed to declare the end of war this year)’하고 뒤이어 3자 또는 4자 회담 적극 추진으로 바뀌었다. 북한이 당초 번역했던 내용 그대로를 정부가 수용한 것이다. 유엔에 돌렸다는 번역본의 다른 부분에서도 북한 번역본의 영향이 강하다고 한다. 이런 중요한 내용까지 북한의 요구를 추종(追從)한 셈이다. 이래놓고 통역관 출신의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외교관들을 향해 영어를 잘 못한다고 군기를 잡는다니, 걱정스럽다. 정부는 이제라도 북한에 대한 저자세에서 벗어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