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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 헌법학

4·27 판문점 선언은 ‘나도밤나무’인가? 현 정부가 이번 주 중 국회에 제출해 비준 동의를 얻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판문점 선언은, 실은 그것이 지니는 법적 성격과 따라야 할 민주헌법상의 절차적 결격 사유로 인해 국회 비준 동의의 대상인 조약(條約)일 수 없다.

첫째, 판문점 선언은 두 정상 간의 정치적 선언 내지 신사협정이지, 법적으로 두 나라 사이의 구체적인 상호 권리와 의무를 합의한 조약이라 할 수 없다. 더구나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은 나라가 아니며 오히려 반(反)국가단체다.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는 판문점 선언과 비교하면 훨씬 구체적인 상호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어서 단연 조약으로서의 법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남북기본합의서는 그 서문에서 조약의 주체가 되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당시 국회의 비준 동의가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는 물론 있었지만, 그것이 실제로 이뤄진 일은 없었다.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남북이 이제 법적으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됐다는 증거는 어느 곳에도 없다.

둘째, 남북의 극심한 경제력 차이를 고려하면 북한의 철도와 도로의 현대화를 비롯해 10·4선언에서 합의한 경제협력 사업은 한국이 일방적으로 퍼주는 사업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의 평화수역화도 남쪽의 일방적인 군사적·경제적 양보가 될 것이다. 일방만 의무를 지는 약속은 영미법에서는 계(조)약으로 치지도 않는다. 이른바 우리민족끼리의 민족 자주를 그렇게 외치면서도 북한의 선의에만 의존해 겨우 몇 시간 만나고 영영 다시 헤어지는 이산가족 상봉도 그러하다. 국군포로나 납북자의 인도적 송환 문제는 언급도 없다.

셋째, 핵이 없는 남쪽의 최근의 안보 위기가 북한의 핵과 그 운반 수단 성공 때문임을 고려하면 북핵 폐기 조항 없는 한반도의 비핵화는 북의 일방적 호의에만 의존하는 구조다. 판문점 선언이 미국의 정전선언, 주한미군 철수, 미국의 핵 전개까지 한국이 그것을 얻어내야 함을 암묵적 전제로 둔 것이라면 남북 양자 조약인 판문점 선언에서 미국은 당사자 아닌 제3자에 불과함을 주의해야 한다. 그러한 합의라면 그것은 조약이라 할 수 없다.

넷째, 주무장관이 주도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체결한 조약을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비준(최종확인)하는 것이 헌법과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이 마련한 절차다. 하지만 판문점 선언은 주무장관 등 정부가 아니고 청와대 참모진이 마련한 스케줄과 장소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 합의한 선언문이다. 여론에 밀려 추후에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게 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법이 예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섯째, 국회의 비준 동의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조약의 비준 전에 국민대표·입법기관인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하나의 입법행위다. 절차적으로 다 끝난 판문점 선언을 추후에 비준 동의를 요구하는 것은 조약 비준 전에 국회를 통해 국민 의사를 반영하라는 헌법적 요청에 반함을 의미한다. 비준 동의는 결코 단순한 의례적 요식행위가 아니라, 민주적 요청이 반영된 법적 절차다.

판문점 선언은 여당이 가령 소수 야당과의 거래를 통해 국회 비준 동의 표결은 간신히 얻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지니는 법적·절차적 요소로 인해 구속력 있는 법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게 되기보다는 여전히 정치적 선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