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003년 수리 후 다다익선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영상과 탑 외형 보존이 중요
브라운관 고집할 필요 없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들어서면 눈길을 잡아끌던 ‘다다익선’(1988)이 30년 만에 대체할 모니터를 못 구해 강제 안식년을 맞고 있다. 근데 여차하면 영원한 안식이 될지도 모른다. 일이 여기에 이르자 복원, 보존, 철거는 물론 그대로 남겨 백남준(1932~2006)의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는 역설의 명언을 보여주자는 등등 말이 많다. 모두 옳지만 백남준의 어법에 따르면 모두 틀린다.
보존해야 할 이유는 많다. 비디오아트의 아버지라는 백남준의 세상에 현존하는 가장 큰 대표작이란 점이다. 또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국민 대다수가 다다익선을 꼽는다. 외국에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몰라도 ‘백남준 타워’가 있는 미술관은 알 만큼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사실 ‘우리’ 백남준이라고 자부하지만 뒤셀도르프는 백남준 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저작권 관리는 스미스소니언이 하고 있어 다다익선마저 없다면 우리는 빈 껍데기 백남준만 가진 셈이 된다. 다다익선을 살려야 하는 이유는 이외에도 부지기수다.
모두가 다다익선은 백남준 작품인 줄로만 알지만 실은 건축가 김원(1943∼)과의 합작품이다. 김원은 그리드와 대칭의 단순명료한 형태를 지향하는 이로 황새바위 경당을 비롯해 종교건축으로 일가를 이뤘다. 그는 백남준과 의논 끝에 우리 전통석탑의 형태를 빌려 개천절을 상징하는 1003개의 모니터에 5개의 비디오가 방영되는 다다익선을 완성했다. 작품이 TV들로 이뤄진 탓에 품이 많이 들었고, 전자파, 전기요금도 문제였다. 하나 가장 큰 문제는 TV수명이었다. 1003대 중 한 대라도 고장 나 영상이 안 나오면 관리부실이란 민원이 떴고 언론도 이를 보도했다. 미술관은 이때마다 예비품으로 교체했지만 10m가 넘는 곳에는 사다리조차 펼 수 없어 속수무책이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이 말이 지금 생사의 기로에 선 다다익선을 살릴 해법이다. 보존방법이 정리되자 TV를 구하는 것과 돈이 문제였다. 다다익선에는 기단부에 10인치 522대, 2단에 25인치 195대와 3단에 20인치 103대, 4단에 14인치 93대, 상륜부에 6인치 TV 60대로 이뤄졌다. S전자가 나서 TV를 협찬해주기로 했으나 6, 10, 14인치는 생산하지 않고 있었다. 다행히 14인치는 바르셀로나 공장에서 생산 중이라 공수해왔다. 6, 10인치가 문제였다. 결국 S전자가 현금 2억 원을 내줘 중소기업이 생산 중인 모니터를 구입해 6개월간 백남준의 ‘손’ 이정성(1944∼)을 통해 다다익선은 환생했고 이를 ‘다다익선 2.0’이라 명명하기로 했다.
당시 TV가 10년은 갈 줄 알았다. 하지만 6, 10인치의 수명이 생각보다 짧았고 오늘에 이르렀다. 보존을 위해서 공론화도 중요하지만 2003년 당시 검은TV가 외관이 은색인 TV로 바뀐 것에 주목해야 한다. 백남준에게 중요한 것은 영상과 탑 모양의 외형이지 그것을 구성하는 TV의 색과 모양은 부수적인 것이란 사실이다. 따라서 보존은 숭례문의 예를 따라 “기존 부재를 최대한 재사용”하면 될 일이다. 당시 ‘다시 TV수명이 다하면 어떻게 할까’에 대해 백남준과 이정성, 필자 그리고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은 S전자 H 사장이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은 지금의 TV외형에 브라운관을 빼내고 평면모니터를 안쪽에 고정시키면 볼륨감도 형상도 유지되니 그리하면 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 와 새삼 또 무엇을 의논하고 검토할 것인가. 그의 작품을 생전의 백남준과 논의된 대로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작가’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길은 아닐까. 돌다리도 너무 두드리면 깨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kind=link}
;){kind=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