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박원순 서울시장과 관계자들이 7일 오전 서울 동작구 상도유치원 건물 주변의 지반 붕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 상도동 유치원 지반 붕괴

인근 공사장 무리하게 땅 파
폭우에 20m 흙막이 무너져
지난달부터 건물 바닥 균열
주민들 “예견된 참사 아닌가”
전문가들도 “전형적인 人災”

다세대주택 공사장 흙막이 붕괴로 서울 동작구 상도유치원 건물이 크게 기우는 사고가 발생했다. 7일 오전 현재 건물은 20도가량 기울어져 있다.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유치원 인근 주민들은 전날 밤 11시 22분쯤 사고 발생 당시 “꽈과광 천둥소리와 함께 건물이 기우뚱했다”며 불안감에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했다. 유치원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유치원 교실에 균열이 심하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인근 공사현장 지반붕괴 = 동작경찰서에 따르면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유치원 건물은 바로 옆 다세대주택 공사현장에 설치된 흙막이가 무너지면서 10도 정도 기울었다. 사고가 난 다세대주택 공사장엔 폭 50m, 높이 20m짜리 흙막이 설치가 진행 중이었다. 흙막이란 땅을 깊이 팔 때 주위 지반이 붕괴되는 걸 막기 위해 세우는 가설 구조물이다. 흙막이 공사는 80% 정도 진척됐다. 소방당국은 공사현장 흙막이가 무너지면서 상도유치원을 떠받치던 지반 일부가 함께 쓸려 내려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내린 폭우도 사고 원인으로 꼽힌다. 동작구청은 7일 오전 3시 30분 브리핑을 통해 “폭우로 지반에 물이 스며들었고, 지반이 연약해지면서 붕괴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예고된 참사 =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예견됐던 참사”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유치원 관계자는 “지난달 유치원 바닥에 30∼40㎜ 크기의 균열이 발생했었다”며 “공사업체에 계속 항의했지만,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주장했다. 상도유치원은 지난 5월 구조 안전진단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6월과 7월 두 차례 진단에선 이상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후 8월에 있었던 3차 계측에서 심한 균열 등이 관측됐다. 이에 지난 5일 유치원장, 동작관악교육지원청, 구조안전진단업체 관계자 등이 모여 대책회의를 열기도 했다. 주민 최모(여·55) 씨는 “유치원 바로 밑까지 땅을 파고 들어가니까 ‘저러다가 뭔 일 나겠다’는 이야기를 주민들끼리 자주 했었다”고 말했다.

◇탁상행정, 전형적 인재 = 학부모와 인근 주민들은 공사와 관련해 계속 민원을 제기하고 공사현장에도 대책을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치원에서도 안전 문제를 고려해 공사장 쪽과 인접한 구역에서 진행되던 야외활동 및 수업 등을 금지하고, 원생들을 실내에만 머물도록 해왔다.

전문가들도 이번 사고가 전형적인 인재라고 지적했다. 지난 3월 유치원의 의뢰를 받아 현장점검을 진행했던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사고 지역은 편마암 지대로 붕괴에 취약해 지질에 맞는 조사가 이뤄져야 함에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긴박한 수습 현장 = 사고 현장엔 소방관 44명과 구청 공무원 55명, 경찰 30명 등 총 148명이 긴급 투입됐다. 동작구청은 상도4동 주민센터에 임시대피소를 마련하고 22가구 주민 38명을 대피시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유치원의 기운 정도는 더욱 심해지고 있어 주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오전 10시 현재 20도 정도 기운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은 유치원 건물의 전기와 수도, 가스를 모두 차단하고 휴원 조치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바로 옆 상도초등학교는 이상이 없다고 판단해 정상적으로 등교하도록 했지만, 학부모 대부분이 자녀를 직접 데리고 정문까지 함께 가는 모습이었다.

이희권·손우성 기자 leehek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