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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고, 0도에서 언다. 누구나 안다고 믿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꼭 100도에서 끓는 경우는 드물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에선 낮은 기압 탓에 72도에서 끓는다. 유리 용기는 금속 냄비보다 비등점을 더 높인다. 극단적으로 실험환경을 조정하면 끓는 점이 178도까지, 어는 점은 영하 20도까지 오르내리기도 한다.

과학의 관점에선 끓는 물의 온도를 왜 섭씨 100도, 곧 모든 온도의 기준으로 삼았는지가 의미 있다. 1600년경 이미 온도계가 쓰였지만, 측정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아이작 뉴턴도 사람 체온을 고정점으로 사용했을 정도다. 물의 비등점과 응고점을 표준으로 삼자는 합의가 이루어진 후에도 논란은 끝나지 않는다. 물이 끓기 시작할 때와 맹렬히 끓을 때 온도가 다르고, 물이 어는 온도와 얼음이 녹는 온도가 같지 않다는 등의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장하석(51)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는 2004년 ‘온도계의 철학’에서 지금은 당연한 듯 보이는 온도계가 혁신적 사고, 각고의 실험, 대담한 추측, 치열한 논쟁 끝에 얻어진 놀라운 성취물이라고 짚었다. 이 저작으로 2006년 ‘과학철학의 노벨상’이라는 러커토시상을 받았다.

이제 정교한 온도계를 가졌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영하 5도라도 바람이 시속 5㎞로 불면 영하 13도, 30㎞ 때는 영하 20도로 느낀다. 체감온도다. 바람 외에 습도, 햇볕, 체질에 따라 달라지는 게 온도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1일 청와대에서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 ‘카타 온도계’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카타 온도계는 35도와 38도 눈금만 있는 기기로, 그 평균인 36.5도가 사람 체온이다. 바람·습도 등의 변수에 따라 38도에서 35도로 떨어지는 속도가 달라진다. 체감온도계다. 김 부총리는 “우리 경제도 외형온도와 체감온도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며 “거시경제 지표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일자리·소득분배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일자리와 분배 악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것이 소득주도 성장이다. 이를 주도해온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전날 더불어민주당 의원 워크숍 특강 후 “국민이 생각하는 체감도와 다른 얘기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는 장하석 교수의 사촌 형이다.

경제지표 온도를 유리한 쪽으로 조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경제 현장의 체감온도까지 고칠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