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홍대 인근에서 3년째 소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개그맨 윤형빈이 홍대 명물인 ‘주차장 골목’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종격투기 선수로도 활동 중인 그의 펀치 뻗는 폼이 일품이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1만 관객 모은 ‘코미디위크’ 개최 개그맨 윤형빈

개그 페스티벌 올해로 2회째
선후배 개그맨 묶어주는 역할
이경규·박수홍·남희석 참가

3년전 사재털어 홍대에 극장
관객 20명 첫 공연 무대에서
지금은 적자없이 운영할 수준

왕비호 10주년 연말쯤 컴백
복장 200벌 이상 이미 준비
격투기 내년초 고별전 계획

지난 8월 9∼12일, 서울 마포구 홍대 거리에서 개최된 개그 페스티벌 ‘코미디위크 인 홍대’(코미디위크). 70여 명의 개그맨이 참여한 이 행사는 나흘간 약 1만 관객을 모았다. ‘개그콘서트’ ‘웃음을 찾는 사람들’ 등 TV 속 개그 프로그램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과 딴판이다.

지난 2016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 공연을 연 코미디위크. 선후배 개그맨들을 한데 묶은 주인공은 바로 ‘왕비호’로 유명한 윤형빈(38)이다. 서울 홍대 한복판에 사재를 털어 ‘지분 100%’를 확보한 ‘윤소그룹’을 설립하고 ‘윤형빈 소극장’도 운영하며 후배를 양성하는 그의 열정에 감탄한 이경규, 박수홍, 남희석 등 선배 개그맨들도 오랜만에 무대에 올랐다.

개그콘서트의 황금기를 함께한 그의 대표 캐릭터 ‘왕비호’를 거쳐 이종격투기선수 데뷔, 소극장 경영자이자 한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윤형빈을 그의 피와 땀이 밴 윤형빈 소극장에서 만났다.


―직접 극장을 운영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원래는 8년 전부터 부산 경성대 앞에서 ‘윤형빈 소극장’을 운영했어요. 3년 전부터는 홍대에도 차리고 두 곳을 챙기다 보니 원형탈모가 오더군요. 그래서 지난해 초에 경성대 앞 극장을 접었어요. 짐 다 빼고 ‘다시 올게’라고 인사하고 왔는데, 홍대에서 잘돼서 다시 경성대 극장을 살리는 게 목표입니다.”

―왜 대학로가 아닌, 임대료 비싼 홍대에 터전을 잡게 됐나.

“대학로는 포화상태여서 새로운 곳을 찾았죠. 발품을 팔다가 이곳을 발견했어요. 이 공연장 앞 사거리가 전국 유동 인구 1위라고 해요. 정말 좋은 위치죠. 예술의전당을 설계하신 친구의 아버님이 도면을 보고 이 공간을 만들어 주셨어요. 그러니 예술의전당과 동급 공연장이죠.(웃음)”

―민감한 질문이긴 한데, 수익은 나나.

“다행히 적자는 아니에요. 제 사비를 털어 운영하고 있는데 고맙게도 와이프(개그우먼 정경미)가 묵묵히 지지해줘요. 개그우먼이기 때문에 왜 이런 공간이 필요한지를 알죠. 상주 직원이 3명인데 개그맨 지망생들에게는 월급도 주고 있어요. 첫 공연 때는 20명밖에 오지 않아 걱정했죠. 포스터랑 초대권 들고 나가 열심히 홍보하면서 여기까지 키워왔어요.”

―어떤 계기로 홍대에서 코미디위크를 열게 됐나.

“경성대 앞에서 ‘윤형빈 쇼’로 50회 이상 매진을 기록하면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웃고 싶은 분이 많은 거죠. 선배들이 가진 노하우를 바탕으로 공연을 만들고 신인을 육성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어요. 우리가 직접 나무판자 가져다가 도색하며 무대를 만들었던 공연이 이렇게 커진 거예요.”

―이경규, 남희석, 박수홍 등을 어떻게 다시 무대에 세울 수 있었나.

“1회 공연 때 무대에 서주신 이경규 선배님의 공이 컸어요. 선배님의 공연은 역대 제가 본 개그 공연 중 가장 표값이 아깝지 않았죠. ‘이래서 대가구나’ 싶었어요. 박수홍, 남희석 선배님은 제가 따로 뵙고 스탠드업 코미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끝에 흔쾌히 무대에 서주셨죠. 이런 선배님들이 동참해야 시장이 커지는데, 그분들을 보며 개그맨이 되겠다는 꿈을 키운 후배들에게도 큰 자극이 됐어요.”

―다음 코미디위크 때 꼭 섭외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강호동 선배님을 꼭 무대에 올리고 싶어요. 강호동 선배님은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프라이드뿐만 아니라, 개그맨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분으로 알고 있어요. TV 속에서는 ‘개그맨 강호동’의 모습은 쉽게 보기 힘드니까 오프라인 무대에 오른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런데 막상 부탁드리려니 조금 무서워요.(웃음)”

―수긍할 수밖에 없는 독설을 날리던 윤형빈의 모습이 그립다. 왕비호의 모습으로 무대에 선 윤형빈은 언제 볼 수 있나.

“개그콘스트에서 2008년에 왕비호를 선보였으니 벌써 10주년이 됐네요. 그동안 선배님이나 후배를 위한 무대를 준비하는 데 전력을 쏟다보니 정작 제 무대는 못 챙긴 것 같아요. 주변에서도 “왕비호를 다시 보고 싶다”고 말해주는 분들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올 연말에는 왕비호 옷을 입고 다시 무대에 서볼 계획이에요.”

―왕비호만의 독특한 복장은 어떻게 다시 준비할 계획인가.

“(웃으며) 한창 활동할 당시 똑같은 옷을 많이 사놨어요. 원래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되게 많이 사놓는 스타일이죠. 왕비호 복장은 제게 ‘아이언맨 슈트’와도 같아서 200벌 정도 있어요, 하하. 그동안 유물처럼 보관해놨는데, 공연을 시작하면 40∼50벌 정도 새 봉투에 담긴 의상을 꺼내 입으면 될 것 같아요.”

―이종격투기 선수로서는 고별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2014년에 일본 선수 다카야 쓰쿠다에게 TKO승을 거둔 후 벌써 4년이 흘렀네요. 저도 이제 40대를 바라보고 있어서 고별전을 빨리 가지려고 해요. 올해 말 아니면 내년 초쯤요. 상대는 누구여도 상관없어요. 첫 경기 때는 ‘무조건 이기자’는 것이 목표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이번엔 아주 치열하게 싸워보고 싶어요. 난타전도 주고받으며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싸우려 해요. 저는 방송을 하면서도 뒤로 빠지는 성향이 있어요. 강호동 선배님은 방송에서도 1대1로 붙으면 이기는 스타일인데 저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이종격투기를 할 때는 보다 저돌적인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물론 그렇게 해서 이기면 더 좋고요.”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