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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前 통일연구원장

대한민국 군대가 격변을 겪고 있다. 새 시대에 걸맞은 군대로 거듭나기 위한 산고(産苦)인지, 오합지졸 ‘물렁군대’로 전락하는 과정인지 무척 혼란스럽다. 군 복무 기간 단축, 동성애 허용, 병사들의 평일 외출 허가 등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계획들이 발표되니 하는 말이다.

이러한 때에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자’ 문제로 사회가 떠들썩하다. 국방부가 병역 거부자 대체복무 기간으로 36개월 또는 27개월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사회적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이들은 재판에 회부돼 병역법을 위배한 범법자가 됐다. 그런데 최근에는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고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 제도를 병역법에 포함시키도록 권고하는 등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간다 하더라도 반드시 유념해야 할 점들이 있다.

첫째, 대체복무제가 포퓰리즘 정치의 산물로 인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명쾌한 사법적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대체복무제의 기본 취지는, 젊은이들이 범법자가 되는 것을 막아주면서도 이로 인해 국방의 의무를 명시한 헌법에 따라 현역으로 복무하는 청년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충분한 대안들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본다면 ‘양심적 병역기피’를 무죄로 추정한 최근 헌재의 판단이나 법원의 판결은, 종교와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기피하는 사람들을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한 병역법을 합헌으로 결론 내린 2011년 헌재의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우리 헌법이 국방의무를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로 명시하고 있는데도 이런 판결들이 나온다면 이는 사법부의 일관성과 공정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둘째, 도입된 대체복무제의 내용 또한 국민 여망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남북한은 북한의 평화 공세 이래 활발한 대화 국면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 핵 폐기와 관련한 평양 정권의 진정성을 확인시켜줄 합의나 행동은 나온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앞질러 축소 지향적 국방 개혁을 추진하고 종전(終戰)선언을 서두르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또한, 국민은 정부가 현재 및 미래의 위협에 충분히 대비하는 안보 정책을 펴 주기를 기대하며, 이러한 안보 여건에 부합하지 않는 군 개혁에 대해서는 신중함을 잃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러한 국민 여망을 존중한다면, 대체복무제 시행 시 복무 기간은 적어도 현역병의 2배가 돼야 하고, 소방서나 교도소 근무는 물론 그보다 더 큰 위험이 수반되는 임무를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현역병들의 박탈감과 사기 저하를 예방할 수 있으며, 그것이 대체복무자들을 떳떳하게 만들어주는 길이기도 하다.

끝으로,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는 표현은 반드시 바꿔야 한다. 이 표현은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마치 양심적인 행동인 것으로 들리게 하고, 국가의 부름에 응해 현역으로 복무하는 청년들을 ‘비(非)양심적으로 병역을 수행하는 사람들’로 만들 우려가 있다. 종교나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자랑스럽거나 모범이 돼선 안 된다. 그 신념이라는 것이 국가 사회에 유해한 것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즉, 양심을 빙자한 병역 기피뿐 아니라, 반(反)국가적인 병역 기피까지 허용해 줘야 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표현은 국가와 사회에 무해(無害)한 신념을 이유로 하는 병역 기피를 의미하는 새로운 용어로 대체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