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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분석

‘최종분석’(사진)은 ‘케이프 피어’(1991) 등 1990년대 흥행작의 시나리오를 쓴 웨슬리 스트릭의 각본을 필 조아누 감독이 연출한 네오 누아르 영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아름답고 치명적인 자매의 함정에 빠진 정신과 의사 아이잭(리처드 기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등대나 폐건물 등에서 사건의 클라이맥스가 펼쳐지는 점은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1958)을 오마주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잭의 환자 다이애나(우마 서먼)는 매일 같은 꿈에 시달리고 있고,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다이애나는 아이잭에게 언니인 헤더(킴 베이신저)를 만나 가족사를 들어보면 자신의 증상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거라 말한다. 어느 날 밤 헤더가 아이잭 앞에 홀연히 나타난다. 아이잭은 새빨간 원피스를 입고 물결처럼 넘실대는 긴 금발 머리를 지닌 헤더를 보고 냉정을 잃는다. 다이애나가 “언니가 너무 예뻐서 조심해야 할 거예요”라고 한 경고는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헤더는 조심스럽게 자매의 끔찍했던 성장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다이애나는 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강간을 당했으며 그들의 아버지는 원인불명으로 불타 죽었다는 헤더의 말을 듣고 아이잭은 헤더를 사랑하게 된다.

아이잭은 비극을 관통한 여자를 향한 처연함에, 비통함을 간직한 여자가 비추는 역설적 아름다움에 무너진다. 그렇게 심란했던 첫 만남 이후 안절부절못하며 일상을 보내던 아이잭의 집으로 헤더가 찾아온다. 아이잭은 위스키를 권했지만 헤더가 술을 마시면 발작을 일으킨다고 하자 두 사람은 집 앞 카페로 간다. 헤더는 커피를 마시는 내내 자신에게 눈을 못 떼는 아이잭에게 자신은 결혼을 했고, 남편은 악명 높은 범죄자라고 고백하며 선을 긋는다. 하지만 헤더의 표정은 아이잭을 붙잡으려 한다. 불안해하면서도 눈과 입술은 아이잭을 향해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 김효정 영화평론가

헤더는 아이잭과 함께 그의 침실로 간다. 생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헤더의 몸이 아이잭의 손이 닿자 강렬한 반응을 보인다. 마치 막 태어난 아이처럼 흐느끼고 갈구한다. 온기와 호흡, 체액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머금기 위해 아이잭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헤더는 아이잭의 집을 떠나며 남편이 학대하기 때문에 들키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남긴다. 며칠 후 헤더는 남편을 살해한 살인자가 돼 아이잭 앞에 나타난다. 헤더의 범행이 평소 그가 앓고 있던 알코올성 발작증에 의한 우발적 살인이라는 아이잭의 증언으로 헤더는 실형을 면한다. 재판이 종결됐지만 아이잭은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낀다. 다이애나의 증상이 조작된 것이고 헤더가 의도적으로 남편을 살해할 계획을 세워놓고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아이잭에게 접근했다는 것을 알아챈 아이잭은 자매의 음모를 밝히기 위해 나선다.

아름다운 여자에게 영혼을 빼앗겨 신세를 망치는 남자의 설정은 ‘이중배상’(감독 빌리 와일더·1944), ‘과거로부터’(감독 자크 투르뇌르·1947) 등 할리우드 고전 영화에서부터 숱하게 등장한 장치다. 1940년대 중반에 등장해 1950년대 중반까지 영화사의 한 장을 지배했던 누아르 장르는 아름답지만 위험한 ‘팜파탈’과 그를 단죄하는 남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작품을 말한다.

이미 수많은 영화에서 반복된 캐릭터와 줄거리이기에 영화의 최대 관전포인트는 아마도 누가 이 역을 얼마나 잘하는가가 될 것이다. ‘최종분석’은 적어도 이런 맥락에서 설득력이 있다. 킴 베이신저가 맡은 헤더는 외모 면에서도, 카리스마 면에서도 킴 노백이나 바버라 스탠윅이 열연했던 팜파탈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결말은 관습적이다. 아이잭은 자매의 계획된 살인을 밝혀내고, 자신을 제거하려던 헤더를 죽음으로 응징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1990년대 손꼽히는 흥행영화 중 하나다. 영화 전체를 쥐고 흔드는 베이신저의 스펙터클이 이 영화의 장점 중 빠질 수 없는 이유임은 분명하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