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선욱이 오는 31일부터 9월 9일까지 국내 순회 독주회에서 선보일 드뷔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을 연주하고 있다.

- 베를린으로 거처 옮기고 국내 순회 독주회 갖는 김선욱

“독주회는 공간 지배하는 매력
거장들 20∼30代 느꼈던 감정
동질감 느끼며 연주하고 싶어

최근 손열음 누나 무대 감동
50代, 60代 손열음 더 기대

악장사이 박수·기침 좋지만
휴대전화 벨소리는 맥 끊어”

인터뷰 질문이 우습긴 했다. “당신은 현재 백건우의 길에 가깝게 가고 있는 듯한데, 앞으로 정명훈의 길로 갈 수도 있나?” 백건우는 피아니스트로서 한길을 걸어서 거장 반열에 올랐다. 정명훈은 피아니스트면서 지휘자의 길을 걸어 마에스트로가 됐다. 올해 30세의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진지하게 답을 했다. “음악가에게 정해진 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신만의 길을 갈 뿐이지요.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는 저 스스로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하면서 즐겁습니다.”

그는 지난 2006년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8세의 나이로 우승하면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리즈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이며 아시아 최초 우승자여서 주목을 받았던 그는 이후 세계적 악단들과 협연하며 ‘젊은 거장’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는 “도대체 누가 그런 칭호를 붙였는지 모르겠다”며 민망하게 여겼다.

영국 런던에 살다가 독일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최근 서울에 왔다가 돌아갔다. 동료 피아니스트인 임동혁(34), 선우예권(29)과 협연(8월 15일)을 하고, 자신의 독주회 내용을 언론에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김선욱은 오는 31일 경기 하남문화예술회관을 시작으로 9월 9일 서울 예술의전당까지 전국 순회 피아노 독주회를 연다. 그 기간 화성, 인천, 대구, 여주 등에서도 연주를 할 예정이다.

그는 “독주회는 공간을 지배하는 매력이 있어서 중독성이 있다”고 했다. 1대의 피아노가 있는 무대에서 청중을 혼자 상대하는 구도의 미장센이 좋단다.

김선욱은 이번 독주회에서 거장들이 젊은 시절에 남긴 음악을 들려준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9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템페스트)’, 드뷔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브람스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등이다.

그는 “작곡가들이 20∼30대에 느꼈던 감정들과 최대한 동질감을 느끼며 연주하는 것 자체가 좋을 것 같아서 선정했다”며 “최대한 자유롭게 풀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자유롭게’라는 말에는 그의 개인적 심경 변화가 담겨 있다.

“어렸을 때는 연주로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10여 년 이상 전문 연주가로 살다 보니까 그게 사라졌습니다. 작년 말과 올해 초에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내가 피아노를 사랑했던 초심을 되찾은 듯합니다. 이전에는 누구보다도 빠른 성취를 원했습니다. 이제는 음악을 하는 것 자체로 즐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0대 초반에 있는 제가 까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음악이 직업으로 여겨지지 않고 그저 좋습니다.”

그에게 최근 들은 다른 음악가의 연주 중 즐거웠던 게 있냐고 물어봤다. 그는 “올해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손열음 누나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을 들었는데, 성숙하고 무르익은 연주여서 놀라웠다”고 했다. 김선욱은 두 살 위의 손열음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함께 피아노를 공부했다. “친구이자 오랜 팬으로서 50대, 60대의 손열음 연주를 듣고 싶습니다.”

김선욱은 독주회의 매력을 강조하면서도 잘 맞는 파트너와 협연할 때의 기쁨도 크다고 했다. 그런 파트너로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가이 브라운슈타인, 첼리스트 지안 왕, 이스트반 발다이, 에드가 모로, 이상 엔더스 등을 들었다.

“클래식 연주자들은 유럽 관객이 아시아 관객보다 음악을 더 잘 이해하는 듯이 느껴진다고 하던데, 당신은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다면 어디든 좋은 곳”이라며 피해갔다. 청중 매너와 관련, 그는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거나 기침을 하는 것은 괜찮은데, 휴대전화 벨 소리는 음악의 맥을 끊으니 주의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향후 몇 년간 미국과 유럽에서 각종 독주회와 협연, 그리고 음반 발매 계획으로 바쁘다. “한국 출신인 신동훈 작곡가의 작품을 유럽에 소개하는 무대도 있는데요, 현대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어요.”

2019년 5월에는 영국 ‘본머스 심포니’ 공연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과 교향곡 4번으로 지휘자 데뷔를 한다. 김선욱은 “데뷔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했으나 앞으로의 행보가 크게 기대가 된다.

글·사진=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