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케이블에서 방영하는 ‘봉수황(鳳囚凰)’이란 드라마가 있다. 깔끔한 화면과 매끄럽게 엮인 대본으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출연하는 배우도 젊고 비주얼도 뛰어나다. 한마디로 명품 드라마 같은 느낌을 준다. 봉수황은 원래 봉구황(鳳求凰)이란 단어에서 변용된 제목이다. 한국어로는 서로 다르지만 중국어로는 수(囚)와 구(求)가 ‘치우’로 발음이 같다. 동음이의어로 차용해 쓴 것이다. 봉구황의 봉은 수컷을 의미하고 황은 암컷을 의미한다. 그러니 사랑 이야기가 된다.

봉구황은 중국 유명 문인인 사마상여(司馬相如)가 탁문군(卓文君)에게 청혼할 때 썼던 시의 제목이다. 봉구황이라고 하면 절절한 사랑을 상징하기도 한다. 탁문군은 남편을 사별한 젊은 여인이었는데, 사마상여가 그녀에게 반해 이 작품을 쓰게 됐다. 하지만 봉구황은 말이 문학작품이지 낯 뜨거울 정도로 노골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수황’은 수컷인 봉이 사랑 때문에 암컷인 황에게 갇힌다는 뜻이다. 이 역시 사랑 이야기라고 하겠다. 그런데 ‘봉수황’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실제 역사적 사실은 막장 중의 막장이다. 분명히 역사서에 기록돼 있는 내용이지만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노골적인 사마상여의 작품 제목을 차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중국의 긴 역사 속에는 막장적인 내용이 적지 않다. 넓은 땅덩이에 사람도 많으니 별의별 일이 많기도 하다. 가짜 공주 사건도 있고, 아비와 아들 모두에게 시집간 여인도 있다. 이외에도 상상 그 이상의 내용이 많다. 그중에서도 ‘봉수황’의 모티브가 된 황제 유자업의 행태는 막장 역사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유자업은 5세기 남조시대 송나라의 황제다. 이후에 세워진 송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앞에 성을 붙여 ‘유송(劉宋)’이라 부르기도 한다. 막장의 주인공은 황제 유자업과 누이인 산음공주 유초옥이다. 남매는 힘을 합쳐 막장의 끝을 보여준다. 에로 막장이라고 할 정도로 어떤 막장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다.

한 예로 산음공주는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남편을 둔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산음공주는 이미 결혼을 해서 부마가 있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동생인 황제에게 남편이 한 명이라 불만이라고 토로한다. 황제가 첩을 두는 것처럼 자기도 더 많은 부마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에 누나만을 믿었던 황제는 그녀에게 남자 30명을 하사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도 유부남에게 추파를 던지는 등 기행을 계속했다고 한다.

동생인 황제 유자업도 온갖 패륜을 저질렀다. 10세였던 이복동생을 죽이고,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귀신이 들린다고 병문안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신하를 죽이는 등 패악질이 계속되자 황제에 등극한 지 1년 만에 신하들에게 시해당한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두 남매의 나이가 채 20세가 되지 않은 10대였다는 사실이다. 죽임을 당했을 때 나이가 유자업이 16세, 유초옥이 19세였다. 그러니 그들이 기행을 저지른 나이는 이보다 어렸을 때였던 셈이다.

드라마 ‘봉수황’은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시간 있을 때 실제 역사와 비교하면서 본다면 보는 맛이 더할 듯하다. 최근 한국에서 ‘미스터 션샤인’의 역사 왜곡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 실제와 허구를 구별하면서 보는 것이 역사극을 보는 진정한 맛이 아닌가 한다.

한양대 인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