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스타트업 육성 기업 테크콰티어의 ‘오픈 스페이스(open space)’. 테크콰티어는 자사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스타트업들에 자유롭게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 ② 낡은 제도와 새로운 금융의 충돌

은행영업점 3.8% 문닫았지만
핀테크·AI투자자문 시장 확대
일자리 창출 가능성 무궁무진

獨 금융스타트업 육성 전문가
“정부주도땐 창의·혁신성 저하
민간 자율성장으로 고용 늘려”

P2P 대출거래·소액해외송금
한때 대부업·외국환法에 막혀
“규제 탄력적 운영을” 목소리

“정부는 후원하는 대신 매번 보고서를 원하죠. 끊임없이 도전하고, 때론 실패하기도 하는 스타트업과는 성격이 맞지 않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심에 자리한 스타트업 육성 기업 ‘테크콰티어’ 설립자 제바스티안 셰퍼 박사는 이같이 말했다.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한 회원사만 100여 개일 정도로 독일 내 강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지만, 정부 후원은 받지 않는다. 자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셰퍼 박사는 “정부 주도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은 오히려 창의·혁신성이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 육성은 파트너사들의 자발적인 후원으로 이뤄진다. 셰퍼 박사는 “우리는 후원해 달라고 구걸하지 않는다. 우리가 경쟁력이 있으니 파트너사들도 후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원사 절반 정도는 핀테크 관련 스타트업이다. 이외 빅데이터 분석, 사이버 안보 등 뛰어든 분야도 다양하다. 테크콰티어는 이들이 자유롭게 생각을 뻗을 수 있도록 공간 제공은 물론, 부족한 부분에 대한 컨설팅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사무실은 혁신의 상징 ‘구글캠퍼스’를 떠올리게 한다. 잔디밭을 연상시키는 바닥부터 쉴 공간, 운영진이 편안하게 통화할 수 있는 방음 부스, 음료를 즐길 수 있는 바(bar)까지 없는 게 없다. 스타트업들이 벽 곳곳에 붙여둔 “규칙을 깨자” “해적이 돼라” 등의 문구도 눈에 띄었다. 자율성을 바탕으로 성장한 스타트업들은 결국 새 일자리 창출의 통로가 돼왔다.

아산사회복지재단 학술연구사업을 통해 ‘금융 분야에 있어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일자리 대책’을 연구한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7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있어 일자리 대책 방안의 핵심은 어떻게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지, 창출된 일자리에서 일할 전문 인력을 어떻게 양성할지다”고 강조했다. 고 교수는 “먼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적극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금융업이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불합리한 규제를 정비하고, 필요한 법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 일자리 창출, 문제는 규제 = 금융감독원에 의하면 2017년 9월 말 기준, 앞선 1년 동안 은행 영업점 279개(3.8%)가 문을 닫았다. 은행원도 4338명(3.7%)이 퇴직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동 투자자문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금융업 등이 가능해지며 영업점을 기반으로 운영되던 전통적 방식의 금융업이 줄어들고 있다.

악재만은 아니다. 역으로 자동 투자자문 및 자산운용 시장 일자리가 늘어날 전망이다. 분산원장(기존처럼 데이터를 중앙에서 관리하지 않고 거래 참가자 모두에게 공개하는 방식) 기술을 활용한 암호화 자산 거래가 증대함에 따라 거래소를 비롯한 청산 결제, 후선 업무(back office), 부정 거래 감시 통제 업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인 대 개인(P2P) 금융 시장도 마찬가지다. 이미 P2P 대출 거래규모는 2조 원을 넘어섰다. 거래 중개운영업체 수도 상당수 늘어났다. 크라우드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8년 2월 기준 중개운영업체 수는 188개에 달한다. 빅데이터(big data·대규모 정보) 분석 시장도 하나의 핵이다. 이외 인터넷 전문 금융업, 정보통신망상 금융업의 안전성을 뒷받침할 금융 보안 전문 일자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일자리 창출이 충분히 가능함에도 규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고 교수는 “본래 우리나라 금융업 규제 정도가 강한 데다 특히 새로 나타나는 금융업은 기존 규제 체계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가 제시하는 대표적 사례가 P2P 대출 금융업과 소액해외송금업이다. P2P 대출 금융업의 경우 정보통신망상에서 중개운영업체가 대출을 중개하는 식. 고 교수는 “중개운영업체가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상 대부중개업에 해당해 지방자치단체, 금융위원회에 등록하고 여러 규제를 준수해야 해 사실상 중개업에 지장을 받는다”고 말했다. 결국 중개업체들은 대부업 회사를 설립해 회사가 대출을 실행하고, 그 원리금을 투자자에게 매각하는 간접형 대출 거래를 선택한다. 고 교수는 “차입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불리한 비효율적인 거래”라고 평가했다.

소액해외송금업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금융기술업체들은 이미 간편 송금 결제 기술을 개발했음에도 2017년 외국환 거래법이 개정돼 이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영업할 수 없었다. 이전 법은 오직 금융기관들만 해외 송금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규제했기 때문이다.

◇규제가 규제를 낳는 폐단 없애야 = 고 교수는 “선제적인 법적 정비 및 규제 혁신이 필요하다”며 “먼저 사전 규제를 완화하고 사후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업이 나타나도 관련 법령에 위반된다면 성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사전 동의제도가 대표적이다. 동의받은 개인정보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려면 또 동의를 얻어야 해 빅데이터 활용에 걸림돌이 된다. 이 때문에 개인정보를 오·남용하거나 유출할 경우 사후에 강한 제재를 가하는 방식이 보다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그가 제시한 또 하나의 해법은 ‘규칙 중심 규제’에서 ‘원칙 중심 규제’로의 선회다. 기존 규칙 중심 규제는 규제 목적보다 규제가 명시한 절차나 방식이 우선이었다. 법 조문에 규제 절차나 방법 등을 세세하게 기술해 놓다 보니, 규제가 추구하는 원칙이 무엇인지 고려하기보다는 단순한 법령 위반을 이유로 제재가 이뤄지기도 했다.

원칙 중심 규제는 규제를 통해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지 그 목적과 원칙을 명확히 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이 다르다. 원칙 중심 규제에 따를 경우 금융감독기관은 금융기관이 실제 하고자 했던 목적을 달성했는지 판단하고, 이에 근거해 제재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고 교수는 “규칙 중심 규제는 금융기관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저해할 수 있다”며 “원칙 중심 규제는 규제가 탄력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함으로써 금융기술 관련 산업 발전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랑크푸르트 = 글·사진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테크콰티어 설립자인 제바스티안 셰퍼 박사가 조용히 통화할 수 있는 방음 부스에 앉아 있다. 부스 의자는 비행기를 모티브로 했다. 테크콰티어는 참여 스타트업들에 이곳 외에도 식음료를 즐길 수 있는 바(bar), 침대, 피아노 등 다양한 시설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