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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150억 파운드(약 22조 원) 규모의 원전 영국 수출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탈(脫) 원전 정책의 부작용이 누적되고 있는 듯하다. 한전은 영국 북서부 무어사이드에 원전 3기를 건설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지난해 12월 중국 등을 제치고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돼 올 상반기 중 인수계약을 마칠 예정이었는데 협상이 틀어지면서 우선협상 대상자 지위를 잃어버렸다. 계약이라는 것이 조건에 따라 잘못될 수도 있고, 막판 밀고 당기기 과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지 언론의 반응을 보면 국내 탈원전 정책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우려되는 지점이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은 “한국의 정권교체와 신임 한전 사장 임명 등으로 불확실성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현지 언론 입장에선 자국에서는 원전을 짓지 않겠다고 하고선 외국에 수출하겠다는 한국의 입장이 의아하게 비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무어사이드 원전만 해도 사업자가 자금을 조달해 직접 운영하면서 30여 년 유지·보수를 책임져야 하는데 원전기반 시설이 무너지고 인력 체계가 붕괴될 가능성이 큰 나라에 수주를 맡기는 것은 큰 위험부담이 될 수 있다.

무어사이드 원전 수주가 불투명해지면서 탈원전과 원전 수출을 병행한다는 문 정부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국내에서 신규 원전 계획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끝나는 2021년 이후엔 일감이 없어진다. 최근 한국수력원자력은 비밀리에 이사회를 개최해 월성 1호기의 조기폐쇄와 천지 1·2호기와 대진 1·2호기의 건설사업을 종결키로 의결했다. 신한울 3·4호기는 인허가가 난 부분도 있어서 시간을 갖고 면밀한 검토를 하겠다고 했으나 한수원은 ‘신규원전사업정리실’을 신설해 신한울 3·4호기 건설 백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신한울 3·4호기는 이전 전력수급계획에 포함돼 국책과제로 추진되던 사업이었다. 2016년 3월 한국전력기술㈜과 종합설계용역 계약을 체결했고 2017년 2월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로부터 발전사업허가를 취득했고, 70% 이상의 부지를 매입했다. 두산중공업은 이미 원자로, 증기발생기 등 원전 주요기기 제작에 착수했다. 부지 매입을 제외하고도 6000억 원 이상이 지출된 사업이다. 두산중공업 그리고 한전기술 등에 대한 손해배상을 포함하면 6000억 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다.

원전 4기 건설 무산으로 3만 개 일자리가 날아갔고, 대학에선 원자력 인재들이 탈출하고 있다. 수출마저 막히면 기술·인력 인프라는 더 빠르게 무너질 것이다. 탈원전하면서 수출로 활로를 찾는다는 발상부터가 난센스다. 40년간 축적된 기술력도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한전은 10조 원에 가까운 적자를 안고 있으며 제8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전력 수요를 낮게 잡았다는 것도 확인됐다. 국토는 급속도로 황폐화하고 있다. 숲을 깎고 호수를 덮어 태양광 패널을 깔고 있는 것이다.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제8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전력 수요를 적게 예측한 것이 드러났다. 올해 최대전력으로 예측했던 것이 86.1기가와트(GW)였으나 7월 24일 92.6GW에 도달한 것이다. 전력수급계획은 지금 수립한 것이 수십 년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원전건설을 백지화하고 전원개발 부지를 해지하는 등의 행정행위를 서둘러 결정하는 것은 국가적 손해이자 재앙이다. 뒤늦게 후회해봤자 누가 책임을 지겠는가. 잘못 시작된 탈원전 정책의 허구와 모순을 바로잡는 길이 정도다.